[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장마답지 않은, 이른바 ‘마른장마’에 제습기 업계가 울상이다. 당초 업계가 전망한 올해 국내 제습기 시장규모는 250만대에 8000억원. 4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각 업체의 신제품 라인업과 생산량 등을 고려했을 때 1조원도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2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제습기 시장이 조금씩 삐걱대고 있다. 무엇보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중부지방에 장마가 시작된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지역 강수량은 2.7밀리미터에(mm)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 365mm의 비가 내린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고 평균 기온도 26.2도로 1.4도 높아졌다. 쉽게 말해 날씨가 습하고 저녁에서 열대야나 후텁지근한 느낌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초에 공장을 돌려 열심히 제습기를 만든 각 업체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있지만 당장 쌓인 재고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마케팅 비용 상승을 걱정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 제습기 물량이 부족했던 경험이 있어 제품을 잔뜩 만들어놨는데 팔리지 않으니 일단 마케팅으로 수습하자는 전략이다. 이러다보니 비는 안 내리는데 비 내리는 창문에서 제습기 틀어놓고 쾌적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그대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를 정리했을 때 확실히 제습기는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계절가전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해외처럼 지하실이나 욕실, 다목적실 등의 습기를 제거하는 용도로 쓰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습기가 지난 몇 년 동안 급속히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은 에어컨보다 저렴한 가격에 유지비도 적게 들면서 시원하기를 요구했던 소비자 마음이 컸다.
따라서 제습기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의 재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단순히 습기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청정과 같이 중장기적으로 헬스케어 제품으로의 진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서 이 기간에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일부 업체의 욕심을 줄여야 한다. 현재 대기업 브랜드라도 20만원대 후반, 30만원대 초반이면 고급 기종 구입이 가능하다. 조금만 더 보태면 인버터 컴프레서가 내장된 최상위 기종도 구입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제습기는 장마에 제대로 솜씨를 발휘해서 내년에도 소비자가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야 했다. 열대야에 제습기와 선풍기 틀어봐야 별로 시원하지 않으니 말이다. 빨래 말리고 냄새만 줄이려고 제습기를 구입하지는 않을 터다. 날씨 탓만 하지 말고, 극단적으로 음식물처리기처럼 순간의 인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소비자 마음을 잘 아우를 수 있도록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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