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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죽은 메인프레임이 산 유닉스를 쫓아내다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사공명능 주생중달(死孔明能 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만들었다는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사업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삼국지의 일화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쉽게 말해 한국IBM이 죽은 공명이고 유닉스가 산 중달이라는 설명이다.

사업 개시를 일주일여 앞에 두고 배달된 한통의 이메일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우리나라 금융IT의 속살이 사실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정치’가 ‘기술’을 앞도하고 있다는 현실 탓이다.

특히 IT업계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허탈하기만 하다. 일각에선 IBM 메인프레임이 유닉스로 시스템 전환하는 것보다 가격적으로 유리한데도 이를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이 특별 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론이 날 문제다. 다만 IT측면에서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의 전환은 이미 IT시장 전반에 걸친 대세였으며 앞서 농협, 기업은행 등 많은 대형 금융사들이 이미 시스템을 전환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금융사가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한 까닭은 물론 가격적인 문제도 고려됐겠지만 그보다는 특정 벤더에 IT시스템이 종속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가 제일 컸다. IBM의 메인프레임은 하나의 벤더가 일괄적으로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리의 편의성이 강점이지만 특정 기능을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 꾸준히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러한 문제 탓에 금융사들은 메인프레임의 유닉스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금융사마다 최대 IT사업으로 꼽히는 차세대시스템 구축은 결국 주전산시스템 전환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속속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에서 국민은행은 당분간 메인프레임 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국민은행과 이사회는 금융감독원의 검사결과를 기다려 이후 의사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상 유닉스로 주전산기를 전환하는 사업은 물 건너 가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5일 국민은행에 대한 특별 검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5일 검사가 마무리되더라도 국민은행에 검사 결과 및 제재안을 통보하고 이를 국민은행이 수용하기까지는 최소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다시 주전산기 전환에 관한 일정을 준비하더라도 최소 8월은 돼야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국민은행이 IBM과 맺은 전산시스템 OIO(Open Infrastructure Offering) 계약기간은 2015년 6월까지다. 국민은행은 당초 지난 5월 21일 제안요청서 접수를 마감하고 6월 초 사업자 선정 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기로 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전환작업에 걸리는 일정을 약 13개월로 잡았다. 통상 테스트에 2개월여 정도가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에 여유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다시 의사결정 과정에 들어가면 빨라야 7월이나 사업 착수가 가능해 현실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국민은행이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는 이미 시기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를 강행하더라도 시스템의 무중단 운영을 위해선 한국IBM과 단기 계약을 통한 OIO 서비스를 연장해야 하는데 월 87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는 은행으로선 만만치 않다.

특히 87억원이라는 금액은 단순히 서비스 연장을 위한 금액으로 인건비와 예비비 등을 감안하면 최소 한달에 2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가 준비해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닉스로의 전환은 더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국민은행이 이번에 받은 타격을 쉽게 회복하긴 힘들어 보인다. 2년 여간 주전산기 전환 작업을 위해 노력해온 은행과 업계 IT담당자들의 노고도 현재로선 허사가 돼 버렸다.

무엇보다 이모든 시작이 한국IBM이 국민은행에 보낸 한통의 이메일에서 촉발됐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IBM은 올해 메인프레임 탄생 50주년을 맞았다. 50주년을 맞은 해에 글로벌 메인프레임 최대 사이트를 잃고 싶지 않았던 탓인지 외견상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고객을 붙잡아 둘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금융사들의 신망을 잃게 되진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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