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인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 시절, 그때 그 조직의 슬로건은 MDC(Market Driven Company)였다. 당시 이 회사는 시장, 즉 고객 요구에 최우선으로 대응했다. 2004~2005년 사이 노키아와 첫 중소형 LCD 공급 계약을 맺었던 삼성전자 LCD 사업부의 앞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노키아의 요구대로 잘 만들어서 제때 공급만 하면 매출과 이익이 올랐다.
2007년부터 상황이 변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노키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잘 하던 고객사가 하나 둘 없어졌다. 모토로라가 중국 레노버로 팔린 이유도 따지고보면 아이폰 때문이다. 1000개가 넘는 글로벌 부품 업체 가운데 40%가 폐업 신고를 했다. 저항막 방식 터치 업체 대부분이 망하거나, 아이폰에 채용된 정전용량 방식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꿨다. 삼성전자 LCD 사업부와 당시 독립 법인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펼쳤던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내에서는 “고객만 믿고 가다간 같이 망할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주창했던 것이 바로 TDC(Tech Driven Company)다.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대표이사)은 직원들에게 ‘기술만이 살길’이라고 설파하고 다녔다. 이후 투명 LCD가 출시됐고, 플렉시블 OLED 연구개발(R&D)에 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최근 회사 내부에선 ‘기술을 위한 기술은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투명 LCD를 광고판으로 붙였던 강남 신분당선 운영사는 최근 이를 떼어냈다. 투명 LCD의 장점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이유다. 투명 LCD라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고급 냉장고에 투명 LCD를 붙여놨더니 보다 저렴한 투명 아크릴판이 붙은 제품이 나왔다. 굳이 LCD까지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플라스틱을 기판으로 쓴 초기 플렉시블 OLED 패널이 탑재된 스마트폰에 대해선 ‘대체 왜 휘어놓은 거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시중에 나온 ‘휘어진’ 스마트폰은 패널이 휠 수 있는 걸 알리기 위해 휘어놨다는 느낌이 강하다.
뭔가 좋다 해서 만들었더니 별 쓰임새가 없고 돈도 안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삼성디스플레이의 딜레마다. 설익은 대형 및 플렉시블 OLED 분야에서 한 발 빼는 이유도, 학회 발표 논문이 크게 줄어든 이유도 아마 이런 딜레마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투명,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상용화 시기는 아직 요원하다는 것이 핵심이긴 하다. 그렇다면 TDC는 여전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금 트리거(Trigger)를 찾고 있다. 트리거는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다. 시사경제쪽에서는 어떤 사건이 생기는 계기를 뜻한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출시된 ‘아이팟 터치’가 바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찾는 트리거다. 당분간 삼성디스플레이의 세계 최초 제품 발표 사례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허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허울이란 걸 우리 모두가 안다.
트리거를 찾고 있다는 건 ‘단기적 고속성장’을 위한 뾰족한 로드맵이 없다는 뜻이다. 기술로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능동적 자세에서 돈 될게 없나 찾아보는 수동적 자세로 전환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확실하고 분명한 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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