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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비용절감 노력이 최악의 선택으로”…IBM, OIO계약은 ‘독묻은 사과’ 일까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비씨(BC)카드가 작년 8월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중단한 이후, 한국IBM으로부터 도입하기로 했던 전산장비 도입을 취소했고 이는 결국 양측간의 법정다툼으로 최근 비화됐다.

 

그동안 이를 쉬쉬해왔던 한국IBM으로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IBM으로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스마터 플래닛' 전략을 크게 강화해야하는 시점에서 비씨카드와 OIO계약때문에 불거진 송사는 그 자체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구를 똑똑하게’하겠다는 거창한 IBM의 스마터 플래닛 캠페인도 결국 알고보면 OIO 계약과 같은 일괄구매 협상 방식을 강화하겠다는 마케팅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IBM OIO계약, 왜 잔인한가 =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보면, 비씨카드의 태도가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더 이상 구매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 이행의 파기인만큼 비씨카드측에서 어느 정도의 패널티는 감수해야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IBM의 OIO(Open Infrastructure Offering)계약 방식에 의한 전산장비 도입 계약이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단순한 페널티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씨카드는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시작 직전인 지난 2009년 IBM과 6년간의 일정으로 OIO계약을 맺었다.

 

OIO계약이 체결된 이후, 구매자측에서 특정한 사유 또는 불가피한 상황의 발생으로 계약을 파기하게 될 경우 페널티를 지불해야한다.

 

하지만 금융 IT전문가들은 “이 페널티의 수준이 일반의 상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OIO계약을 도중에 파기할 경우에 잔여기간에 대한 페널티를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OIO계약 통상 3~5년간의 기간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100억원어치 IBM 장비를 OIO 방식으로 구매할 경우,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초기 1~2년간은 시스템 소용량이 적기 때문에 비용도 그에 비례해서 저렴하게 지불하게되지만 결국은 계약 기간내에 잔금을 다 지불해야 한다. 초기 비용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착시효과다.

 

그런데 이 OIO계약 방식에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치명적인 위험성이 하나 더 숨어있다.

 

OIO계약을 맺을 당시 구매자가 초기에 IT장비에 대한 물량 산정을 매우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제대로 못했을 경우 OIO계약은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메인프레임 기반으로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는 금융회사가  CPU를 추가로 더 구매하거나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생겼을 경우, OIO계약을 변경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럴 경우 최초 계약에 비해 전산장비의 구매 단가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OIO계약을 맺을 시점에서 향후 소요될 물량산정과 업그레이드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한다.

 

한편으론 금융회사가 초기 OIO 계약 시점에서 전산장비 도입 물량을 지나치게 여유있게 산정해 놓는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다.  

 

금융회사가 100억원 어치를 구매했는데 실제 사용량이 70억원 어치 밖에 안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OIO계약 변경 사유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선 이미 30억원 규모의 필요없은 장비를 구매한 셈이된다. 그 자체로 IT투자의 비효율이 발생한 것이다. OIO 계약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이 적은 이유이다.

 

◆비씨카드 차세대 중단원인이 정말로 CPU 소요량예측 잘못? = 상식적으로 4~5년후의 IT 장비 소요량까지 금융회사(구매자)가 정확하게 예측하고 IBM과 OIO계약 협상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금융IT업계 일각에서는 비씨카드가 지난해 8월말, 차세대시스템을 전격적으로 중단한 배경에는 실제로 이같은 IBM OIO계약의 위험성이 크게 노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비씨카드는 지난해 차세대시스템 가동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주전산시스템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CPU 소요량 부족' 문제가 불거져 내부적으로 곤욕을 치른바 있다. 

 

국내 금융권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소요량이 예상보다 늘어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럴 경우, CPU를 필요한 만큼 추가로 구매해서 프로젝트를 완결시키면 그냥 넘어갈 문제이긴하다.

 

하지만 비씨카드 입장에서 만약 그것이 OIO계약을 변경하고, 그로인해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등 OIO계약에 포함된 계약 단가가 급상승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비씨카드측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결국 프로젝트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 있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비씨카드 입장에서는 아직은 OIO계약이 초기인 만큼 실제로 IBM 지불한 금액이 적은만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당시 CPU 소요량 계산 착오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금융권에서는 그것이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중단의 이유로 쉽게 납득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양측간에 맺은 OIO 계약 조건 내용에 따라 그럴 개연성이 있어보인다.

 

◆IT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 그러나 그것을 역이용한 비정한 상술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비씨카드가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계획할 시점인 지난 2009년, OIO계약을 맺을 당시 CPU 소요량을 왜 정확하게 못했는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자원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그것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 어쩌면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상술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당시 국내 금융권의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할 시기였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금융권에서는 IT투자가 반토막이 났던 시기다.

 

특히 회원사(은행)들의 독자카드시스템 구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을 위해 비씨카드는 막대한 비용부담에도 불구하고 500억원 규모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어쩔 수 없이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푼이라도 프로젝트 비용을 아껴보겠다고 선택한 OIO계약이 정말로 프로젝트를 안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법정 공방과정을 좀 더 지켜보면 결론이 날 문제다.  

  

<박기록 기자>rock@ddai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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