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이통사 기본료 인하가 불편한 이유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KT가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에 무릎을 꿇었다. “정부가 투자 대신 해 줄 것인가?” 라며 방통위와 유일하게 날을 세웠던 이석채 KT 회장도 결국, 최시중 위원장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KT가 11일 이동통신 요금 인하방안을 발표했다. 기본료 1000원 인하, 무료 문자메시지 50건 제공, 스마트폰 선택형 요금제 도입 등 이미 SK텔레콤이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본료 인하는 모든 가입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혜택이고, 문자메시지 무료제공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모듈형 요금제 도입은 요금제 선택 범위를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역시 소비자에게 이득이다.

하지만 KT의 요금인하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소비자 혜택 증대와는 별개로 ‘어린애 팔목 비틀기’식의 정책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뚜렷한 소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론, 정치권의 압력 등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동안 시장경쟁, 자율경쟁을 외쳐왔던 방통위다. 하지만 결과는 1위 사업자인 SKT의 팔목을 비틀고, KT, LG유플러스가 따라오게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의 마케팅전략, 투자계획, 재무상태 등은 그다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아직 LG유플러스가 요금인하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대동소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자간 차별성도 없다. 그냥 모두 기본료 1000원을 내리는 선에서 이번 요금인하는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의 전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주도하에 통신업계 모두가 따라가는 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내심 KT가 SKT 요금인하 방안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모두가 똑같이 기본료 1000원 인하, 모듈형 요금제 도입, 문자 50건 무료 제공을 한다면 시장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료 1000원, 문자 50건 때문에 가입자가 SKT로 빠져나갈 것이 우려된다면 아마도 KT 역시 대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로부터의 압력은 모두가 같은 기본료 1000원 인하라는 결과에 그치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국민들도 기본료 1000원 인하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월 5만원 이상 요금을 내는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마당에 기본료 1000원 인하는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그칠 뿐이다.

“기본료 1000원 내리는 대신 다른 혜택을 달라”는 이용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업자의 전략 수립은 원천 차단됐다. 기본료 1000원 인하 없는 요금인하 방안은 방통위가 원천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3강 구도 고착화를 우려하면서도 정작 이 틀을 깨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모두를 같게 하겠다는 ‘평균의 함정’에 빠진 모습이다. 사업자들 역시 이러한 요금인하 구도에 길들여져 창의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주파수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주파수 정책에 경쟁 정책을 접목해 2.1GHz를 LG유플러스에 주고 나서 1.8GHz의 과열경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업자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전부다. 요금은 내리고, 투자는 확대하라 하면서, 주파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문제점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면 합의제 병폐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고심 끝에 나와야 할 정책들이 지금은 A안, B안, C안으로 마련돼 상임위원들이 입맛에 맞게 고르는 식이다. 당연히 사무국의 책임감은 결여될 수 밖에 없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도 주체가 모호해졌다. 정통부 시절보다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방통위 2기가 출범했지만 아직도 시장에서의 자율경쟁은 요원하다. 사업자 팔목 비틀어 대통령 공약을 지키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정책을 통해 소비자에게게는 제대로 된 이익을 돌려주고 사업자와 전체 IT 산업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디지털데일리 네이버 메인추가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