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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알쏭달쏭 약관, 쉽게 써주면 안 돼요?

로보락 홈페이지에 게재된 개인정보 처리방침.
로보락 홈페이지에 게재된 개인정보 처리방침.

[디지털데일리 옥송이 기자]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거치는 절차가 있다. 회원 가입이다. 애플리케이션,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동네 헬스장 등록 시에도 필수다. 여러 항목에 숱하게 브이(V) 체크를 하며 동의한다고 누차 선언을 해야 “회원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동의, 동의, 동의, 그리고 위 설명을 전부 읽었습니다’에 이르는 동안 정말 다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대개 머리를 긁적일 것이다. 알쏭달쏭하고 길고 말들은 또 어찌나 어려운지. 약관(約款) 말이다.

약관은 계약의 당사자가 다수의 상대편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이른다. 정의에 따르면 계약은 분명 사측과 소비자 양쪽이 맺는데, 최근 행태를 보면 어쩐지 불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인 듯하다.

대개 약관은 모호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약관을 해석하기에 따라 책임의 주체가 달라지는 등 헷갈리는 말들이 적잖다. 최근 약관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도를 높인 건 단연 SK텔레콤이다. 1등 통신사업자 SKT 해킹 사건 이후 통신사 위약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약정도 함께 조명된 것이다. 그간 통신사들은 일정 기간 한 통신사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단말기 보조금을 지원해 왔다. 대신 약정을 깰 경우, 위약금을 적용한다.

이번 SKT 해킹 피해 규모가 큰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통신사를 옮기고자 하는 소비자도 속출했다. 그러나 위약금을 두고 사측과 소비자들의 입장 차가 발생한 것이다. SKT 이용자 약관에는 위약금 면제 사유 중 하나로 '회사의 귀책 사유로 해지할 경우'를 명시돼 있다. 다만 통신사 약관 귀책사유에 이번 해킹사태가 포함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귀책사유'라는 다소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소비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상황이다.

통상 약관은 계약 내용을 망라하는 만큼, 길고 복잡하다. 무엇보다 불친절하다. 법적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에 있어 약관을 뜯어보고 득실을 따지기엔 어려움이 뒤따른다. 기업의 불투명한 약관 운영이 곧 소비자들 피해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 제조사들이 장악한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도 그 폐해가 두드러진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는 내용을 약관에서 어물쩍 넘어가거나 소비자 피해 발생 소지가 있는 부분은 모호하게 적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들의 약관을 살피면 중국 현지 및 제3자 업체에 사용자 개인정보를 전송하면서도 업체명을 밝히지 않거나, 약관에 동의하지 않을 시 앱 사용 자체에 제약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제조사들은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현황에 대한 사전 실태 점검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면서, 국내 행정기관 지침에 적극 따르겠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일부 제조사들의 약관 개정 및 투명한 소비자 개인정보 운영은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나날이 점화되는 약관 관련 논란과 이를 둘러싼 기업들의 미흡한 대처는 결국 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귀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약관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약관이 매번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된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는 잃을 것”이라면서 “결국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기업 가치도 지속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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