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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밀 지도에 달린 미래…스타트업, 구글 ‘요금 폭탄’에 떤다

API 한 번 도입하면 교체 어려워…'기업 간 불공정 거래' 우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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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조윤정기자]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청에 대한 결정을 오는 8월로 연기한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 관련 업계에서는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한 길찾기 기능을 넘어, 자율주행·로봇·디지털 트윈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가 외국 기업에 넘어갈 경우 ‘기술 주권’ 상실이라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장기적인 산업 전략과 국가 안보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14일 구글의 1:5000 축척 고정밀 국가기본도 국외 반출 요청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고, 처리 기한을 60일 연장해 최종 결정 시점을 오는 8월 11일로 늦췄다. 담당 부처인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국가 안보 및 산업계 영향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내비게이션 수준을 넘어, 자율주행차·디지털 트윈·도심항공교통(UAM)·로봇 산업·공간 데이터 기반 AI 서비스 등 다양한 전략 산업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구글의 진입에 대한 산업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 지도 시장은 네이버지도(월간 이용자 수 2650만명), T맵(1435만명), 카카오맵(1056만명)을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수천억 원대 투자와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성장해왔다. 해당 지도 플랫폼들을 기반으로 배달, 모빌리티, 부동산, 숙박 등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서비스를 개발해왔고, 들은 저렴하거나 무료 수준의 지도 API 덕분에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할 수 있었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는 응용 프로그램 간 데이터 교환과 기능 연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터페이스다. 지도 API는 모빌리티, 물류,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등 다양한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작용한다.

문제는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확보할 경우, 다국어 지원, 브랜드 신뢰도, 글로벌 사용자 경험 등을 무기로 국내 플랫폼을 빠르게 압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들이 API 품질과 글로벌 확장성 측면에서 구글을 선택하게 되면, 국내 지도 생태계는 위축되고 자체 기술 발전 동력도 약화될 수 있다.

이승엽 부경대학교 정보융합대학 조교수는 <디지털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글로벌 기업의 지도 시장 진입은 이용자 권익 침해는 물론, 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기업이 지도 API를 활용하는 요금을 예고 없이 인상할 경우, 이를 활용하던 국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이라면 규제 당국의 관리감독 또는 제재가 가능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사실상 우리나라 정부의 행정권이 작동되지 않아 법적 대응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법적 대응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효성도 낮아, 결국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도 API는 한 번 도입되면 다른 기술로 전환하기 어려운 ‘락인(lock-in)’ 구조를 가진다. 구글이 요금 인상이나 정책 변경을 단행할 경우, 기존 시스템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전반을 수정해야 하므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치명적인 전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구글 맵스 플랫폼의 지도 API는 일정 사용량까지 무료로 제공되지만, 월간 무료 할당량을 초과할 경우 요금이 부과된다. 대표적인 요금 항목으로는 동적 지도 로딩이 있으며, 1000회 호출당 약 7달러가 청구된다. 이 밖에도 거리 계산(Distance Matrix)과 경로 안내(Directions API) 등의 서비스는 더욱 높은 요금이 적용된다.

실제로 2018년 구글은 지도 API 요금제를 전면 개편하며, 동적 지도 로딩 기준 1000회 호출당 요금을 약 14배 인상한 바 있다.

정주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전문위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국내 지도 데이터의 해외 이전,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서 “비용 문제도 있지만, 정책 변경에 스타트업이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구조가 더 큰 문제”라며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내 기업의 선택권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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