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비상계엄 선포의 여파로 연내 단통법 폐지도 불투명해졌다. 연내 단통법이 폐지될 것으로 당초 점쳐졌던 가운데,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추진에 차질이 예상된다.
반면 업계는 한숨 돌린 모양새다. 이 기회를 틈타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단통법을 단순 폐지하는 것보다 ‘잘’ 폐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단통법 폐지의 목적을 먼저 분명히해야한다는 입장이다.
◆ 단통법 폐지안, 뜯어보면 제2의 단통법?
8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는 오는 9일 진행하는 전체회의에서 법사위 소관 법률인 고유법만을 심사한다.
당초 업계는 단통법 폐지안이 오는 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타위법은 다루지 않기로 하면서, 연내 단통법 폐지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국회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 돌입한 가운데 이번달 법안 통과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내년 1월 임시회가 열리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는 단통법 폐지안 추진 속도가 더뎌지면서 내심 안도하는 눈치다. 실제 단통법 폐지안이 지난달 26일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직후 업계에선 “더 큰 규제가 탄생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들은 단통법 폐지에 따른 후속조치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사실상 ‘제2의 단통법’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 개정안에 기존 단통법의 ▲제3조(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제1항 제3호 제외), ▲제4조(지원금의 과다 지급 제한 및 공시) ▲제5조(지원금과 연계한 개별계약 체결 제한)를 제외한 대부분 조항이 그대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 폐지에 따른 우려 ① 오프라인 유통망의 붕괴
가장 먼저 반발한 곳은 유통망이었다. 단통법이 폐지되면서 이동통신3사간 마케팅 경쟁이 격화되는 경우 온라인 채널에 대응할 경쟁력이 없는 오프라인 유통망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단통법 제정 이후 활성화된 온라인 유통채널과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오프라인 채널을 더욱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이용자 간 차별을 더욱 강화했다는 지적이다. 통신사가 단통법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채널에 판매장려금(리베이트)을 더 지급했고, 이렇게 탄생한게 ‘성지’라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이 같은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판매권한을 승낙하고 법령 준수여부 등을 관리하는 이른바 '사전승낙제'를 도입했지만, 그 대상이 유통망 가운데 ‘판매점’에만 한정되어 오히려 실효성이 지적됐다.
이에 유통망은 온라인채널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 환경을 먼저 조성해달라고 요청해왔다. 현재 판매점에 한정된 사전승낙제를 폐지하고, 판매점·대리점·온라인채널·중고폰·알뜰폰 사업자가 참여하는 유통망 신고제를 제안했지만 이번 개정안에 반영되진 않았다.
◆ 폐지에 따른 우려 ② 사업자 부담 증가, 통신사-제조사 담합 구조 강화
단말기 제조사도 겉으로는 내색하지는 않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단통법 폐지로 규제가 오히려 강해졌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 제조사의 장려금 관련 자료 제출 의무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통신사와 달리 단말기 제조사가 유통채널에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는 공시되지 않았다. 제조사가 해외시장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면서다.
제조사 입장에선 예컨대 보조금 30만원 가운데 제조사의 보조금이 10만원이라면 소비자가 단말기 가격의 10만원이 거품이라고 여길거고, 이는 결국 전세계 시장에서 보조금만큼 출고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 일각에선 장려금 관련 자료 제출이 의무화되는 경우 오히려 보조금을 줄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단통법 폐지에 따른 최대 수혜자로 지목됐던 통신사의 입장도 크게 다르진 않다.
국회가 장려금 관련 자료 보고 주체를 제조사가 아닌 통신사로 설정하면서, 사업자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될 전망이다. 오히려 제조사-이통사 간 담합 구조를 더욱 강화시킬 우려도 나온다. 이외에도 폐지 이후 사업자 간 경쟁에 대한 시장 기대감을 감안하면 현행 유지가 낫다는 평가다.
◆ 폐지에 따른 우려 ③ 소비자 체감 가계통신비 증가
더욱이 지금으로선 단통법 폐지에 따라 소비자 편익이 증진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당장 통신사가 단통법 제정 이전의 수준으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단통법 제정 이후 통신사와 통신사, 통신사와 제조사간 담합 구조가 더욱 견고해진 가운데 다시 지원금 경쟁을 통한 가입자 확보 싸움을 벌일 이유가 있냐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폐지 이후 일시적으로 단말 지원금이 증가할 순 있지만, 그나마도 고가요금제와 고가단말에 집중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이 경우 소비자의 체감 가계통신비는 단통법 폐지 이후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단말 할인(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 통신비 절감 혜택을 주는 '선택약정 할인제도'의 법적 근거도 사라졌다. 관련 법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됐지만, 이 과정에서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이에 병합안에는 ‘지원금을 받지 않은 이용자에 요금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적혔다. 즉, 통신사는 꼭 선택약정 할인이 아니라도 요금할인의 효과를 주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 "단통법 폐지 목적부터 분명히해야"
전문가들은 여야가 각자의 더 큰 이해관계를 위해 한발씩 물러나면서, 단통법 폐지에 따른 목적이 불분명해진데 따른 결과라 보고 있다.
이용자를 지원금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사라졌지만, 소비자 편익 증진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자율 규제를 표방했지만 오히려 제조사에 대한 규제는 더해졌고, 유통채널에 대한 규제는 유지됐다.
또 수차례에 걸쳐 단통법 폐지에 따른 후속조치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지만,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고, ▲가계통신비에 한축을 이루는 단말기 가격을 어떻게 인하하고 ▲지원금 차별을 유발했던 불투명한 유통구조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방안은 부재했다.
물론, 시장을 예단하기 어렵고 이 시장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순 없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2014년처럼 극심한 혼탁양상이 벌어질 경우 대선 전후 이름만 바꾼 제2의 단통법을 꺼내들지도 모를 일이다.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폐지를 위한 폐지가 되어선 안된다며 정부와 국회에 신중한 검토를 당부하고 있다. 단통법 폐지의 목적을 분명히하고,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관계자는 “기존의 단통법 중 2~3개 조문만 개정하거나 폐지하면 될 일인데 단통법 폐지라는 외형적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꼴 법 개정"이라며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유인하는 등 목적이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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