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SW) 기업 SAP가 전사적자원관리(ERP) 클라우드화를 선언했다. 전통적인 구축형 SW 중심 생태계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로 전환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SAP는 구 ERP 버전인 R3 유지보수 서비스를 오는 2025년 종료하며, ECC 버전도 최대 2030년까지만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또는 잠재적 SAP 고객인 기업들은 클라우드 기반 ‘S/4HANA’ ERP로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차세대 ERP 전환이 클라우드 및 정보기술(IT)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관련기업들의 대응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전사적자원관리(ERP) 1위 기업 SAP가 2027년부터 기존 구축형(온프레미스) ERP 유지보수 서비스를 종료한다. 클라우드 기반 차세대 ERP인 ‘S/4HANA’로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SAP 구축형 ERP를 쓰던 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단순 업데이트 아닌 마이그레이션급 큰 변화를 ERP 공급업체 일정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구축형 ERP인 SAP ECC 6.0 사용기업은 약 3만5000곳으로 추정된다. 이중 S/4HANA로 전환을 시작한 비중은 지난해 2분기 기준 33%에 그친다. 약 3분의 2 기업들은 여전히 SAP ECC 버전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SAP ERP를 사용 중인 기업들이 가장 많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
SAP가 구축형 ERP 지원을 종료하기 전까지 사용기업들은 각 사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될 전망이다. SAP가 권장하는 클라우드 ERP로 빠르게 전환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구축형 ERP를 유지하려는 기업들도 존재한다. 구축형을 유지하려는 기업들은 SAP 대체제를 찾고 있다. 더존비즈온이나 영림원소프트랩 등 국내 ERP 업체가 주목받는 이유다.
기업들은 여기에 또 한가지 옵션이 있다. SAP ERP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3자 유지보수’를 받는 방법이다. 3자 유지보수는 SAP 등 시스템 제공업체에게 직접 유지보수를 받지 않고 제3자에게 받는 방식을 말한다. 3자 유지보수 업체로는 2016년 국내 진출한 리미니스트리트와 스피니커서포트가 대표적이다.
3자 유지보수 업체들을 통해서 기업들은 SAP, 오라클 등 벤더사들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고가 유지보수 비용 대비 최대 50%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비용통제와 혁신창출을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업들은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해 다른 디지털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초기 3자 유지보수 서비스는 단지 비용을 아끼려는 기업들의 선택지라는 인식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3자 유지보수 업체들은 이런 인식에서 탈피하고자 높은 수준 서비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ERP나 데이터베이스(DB) 벤더사에 직접 유지보수를 받는 대신 리미니스트리트와 계약을 맺은 곳으론 현대자동차, SK네트웍스, 롯데마트, 카카오, 대한항공 등이다.
한국리미니스트리트 관계자는 “리미니스트리트는 계약 후 15년간 유지보수를 보장하고, 일반 벤더가 1시간 내외 대응해야하는 요청을 10분 내외 대응하게 돼있다”며 “15년 이상 경력을 갖춘 고급 엔지니어가 고객을 전담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리미니스트리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회사(본사 기준) 평균 성장률은 19%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만 보면 미국 본사 대비 평균 성장률이 더 높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국내 벤더 유지보수 시장 규모를 1조2000억원 규모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최근 삼성물산 사업부 중 한 곳에서 리미니스트리트를 SAP ERP 유지보수 사업자로 선정한 이후 관련 대기업들의 3자유지보수 서비스 검토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3자 유지보수 시장을 모두가 유망하다고만 보는 것은 아니다. 초반에 벤더사 유지보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로 부각된 것은 사실이나, 반짝 인기에 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ERP 등 장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와 안정성 면에서 문제가 없도록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벤더사에 유지보수를 맡기는 기업들도 있다.
미국에선 리미니스트리트가 오라클과 저작권을 두고 13년 이상 지리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타사 소프트웨어 유지보수를 하는 건 합법이라는 리미니스트리트 주장과 지적 재산권 침해라는 오라클 주장이 대치된다.
벤더사들은 기업들이 3자 유지보수 서비스를 이용하다 다시 벤더사로 돌아오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SAP 관계자는 “지난해 호주에서만 40곳이 넘게 3자 유지보수 시장에서 SAP로 윈백을 했다”며 “내부적으로는 기업들이 벤더사로 많이 돌아오는 추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벤더사 유지보수 시장이 과거 벤더사 독점 시장에서 오픈마켓으로 성격이 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지보수가 필요한 기업들 입장에선 내부 전략에 따라 3자 유지보수 서비스로 비용 절감, IT투자를 한 후 벤더사들과 새로운 협업을 도모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3자 유지보수와 벤더사 유지보수를 계속 번갈아 사용하는 기업도 있다”며 “유지보수 주체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과거와 달라진 큰 변화”라고 했다.
3자유지보수업체들이 모두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록인(Lock-In)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자유지보수는 상용SW에 대한 코드 레벨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에는 SAP, 오라클의 전직 개발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쉽게 3자유지보수 기업이 나오기 쉽지 않은 이유다.
국내서 3자유지보수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이 리미니스트리트 하나 인 점도 고객 입장에선 부담이다. 3자유지보수 글로벌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스피니커서포트가 국내 진출했었지만 지사는 철수하고 총판 체제로 사업을 전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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