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SW) 기업 SAP가 전사적자원관리(ERP) 클라우드화를 선언했다. 전통적인 구축형 SW 중심 생태계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로 전환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SAP는 구 ERP 버전인 R3 유지보수 서비스를 오는 2025년 종료하며, ECC 버전도 최대 2030년까지만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또는 잠재적 SAP 고객인 기업들은 클라우드 기반 ‘S/4HANA’ ERP로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차세대 ERP 전환이 클라우드 및 정보기술(IT)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관련기업들의 대응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전사적자원관리(EPR) 시스템이 클라우드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ERP는 재무, 공급망, 고객관리 등 회사 전반적 업무 프로세스 생산성을 높이는 통합 관리 소프트웨어(SW)로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처음과 끝'이라는 비유처럼 기업 IT시스템의 핵심 중 하나다.
이른바 '기업의 데이터는 ERP에서 만들어져 ERP에서 끝난다'는 말 처럼 기업 핵심 데이터를 모두 관리하는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룬다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ERP는 최근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최근 기업 데이터가 단순한 수치 기반의 정형 데이터에서 지리정보, 그래픽, 소셜미디어(SNS) 등을 포함하는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하고 다양한 외부 데이터까지 경영 데이터로 취급 받으면서 ERP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ERP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클라우드 ERP'가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VMR에 따르면 전세계 클라우드 ERP 시장 규모는 2022년 554억달러(한화 약 73조원)로 평가됐다. 2023년부터 연평균 12.53%씩 성장해 2030년엔 1683억달러(22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 ERP와 기존 구축형(온프레미스) ERP는 기본적으로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단 ERP를 운영·관리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온프레미스 ERP는 기업이 자체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ERP 소프트웨어(SW)를 설치해 운영한다. 이 때문에 하드웨어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클라우드 ERP는 말 그대로 클라우드 환경에 ERP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프라이빗 클라우드, 퍼블릭 클라우드 등 다양한 클라우드 환경에서 운영 가능하다. 빨라야 5~6년에 한 번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기존 ERP와 달리 항상 최신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클라우드 ERP 장점이다. 그만큼 시스템 사양을 실시간 수정할 수 있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즉 확장성과 비용 관점에서 클라우드 ERP 강점이 있다.
국내에서 ERP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요 업체들도 클라우드 ERP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글로벌기업 SAP와 오라클, 토종기업 더존비즈온과 영림원소프트랩 등이 크게 4파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 국내 시장의 현 주소다.
한국IDC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ERP 시장 점유율은 SAP가 21%로 1위이며, 그 다음으로 더존비즈온(16.8%), 영림원소프트랩(6.1%), 오라클(4%) 순이다. SAP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ERP 시장 1위 기업이다.
사실 ERP의 클라우드 전환을 이끈 것은 SAP다. 국내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SAP는 특히 대기업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ERP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SAP가 기존 서비스에 대한 유지보수 종료 기간을 예고하며, 기업들이 클라우드 ERP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SAP는 먼저 클라우드 EPR ‘S/4HANA’로 전환하는 고객사에겐 2040년까지 유지보수를 약속했다. 클라우드 ERP로 빠르게 전환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SAP 온프레미스 ERP를 쓰던 기업들에겐 결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SAP ECC 6.0 EHP 6~8에 대한 지원·유지 보수는 3년 후인 2027년에 종료된다. ERP 데이터베이스(DB) 이전은 최소 1∼2년 이상 기간이 필요하다. 단 추가 비용 지불을 통해 기본적인 서비스는 2030년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다. EHP5 이하 버전은 내년인 2025년 종료된다.
국내 대기업들 다수가 클라우드ERP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그동안 잘 사용해오고 있던 SAP 유지보수 정책이 변화하면서다. 기업 애플리케이션은 안정적인 운영이 담보돼야 하는데 SW벤더의 유지보수가 중단되면 기업 입장에선 시스템 유지 및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고장나면 해당 제품을 만든 기업의 사후서비스(A/S)를 받을 수 없다. 새로운 기술 업데이트가 안되는 시스템을 안고 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제품으로 이전해 지속적인 유지보수를 받을 것인지 등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 빠르게 실행에 나선 기업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2월말 SAP S/4HANA 도입 계약을 완료했다. 여전히 온프레미스 ERP 사용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빠르게 클라우드 ERP를 도입하는 건 분명 선도적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클라우드 ERP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즉시 전환에 나서지 못하는 기업들도 있다. 특히 SAP의 ERP는 경쟁사 대비 가격이 높게 설정돼있어 IT 투자 비용을 줄이려는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들은 도입을 어려워한다. 당장 인력구조를 변경하기 어려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SAP 역시 인지하고 있다. SAP는 클라우드 성장과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올해 ‘고객 서비스 및 제공’ 신규 이사회 부문을 4월1일부로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직의 미션은 고객의 클라우드 전환과 이를 통한 혁신이다. 기존 고객의 SAP S/4HANA 전환을 위해 고객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는 클라우드 인프라 선택 및 전환 등에 기술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SAP가 SAP S/4HANA 전환전략이 시장에서 잘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고객의 전환 여정까지 관리해주는 프로세스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 SAP의 SAP S/4HANA 전환 타임라인은 다소 유보된 상황으로 당초 얘기했던 시점보다 미뤄지거나 범위가 변화한 바 있다. 이는 시장 동향이 SAP가 의도했던 것처럼 빠르게 클라우드로 전환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SAP가 쏘아올린 SAP S/4HANA 전환이라는 화두는 ERP 업계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SAP가 시장 장악력을 기반으로 고객의 클라우드 ERP 전환을 이끌어가려 했지만 예상 외로 시장의 저항도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ERP를 두고 기업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SAP가 클라우드 ERP로 전환해야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을 경우, 기업들은 국내 더 잘 맞는 구축형 ERP나 맞춤화 된 클라우드 ERP로 이동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기업마다 사정이 모두 달라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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