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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검정고무신 비극 안타깝지만”…속 타는 플랫폼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법정 공방을 벌이던 도중 별세한 것을 계기로 업계 안팎에서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웹툰협회가 창작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이우영법’을 추진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는 2020년 유정주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지난해 김승수 의원(국민의힘)이 각각 대표로 내놓은 법안을 통합 조정한 대안 위원회안을 의결했다.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은 콘텐츠산업진흥법 등에서 강제력 없이 선언적 규정에 그친 기존 법령들을 통합, 불공정행위 유형을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제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창작자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한 유통환경을 마련한다는 목표다. 해당 법안은 저작권법을 중심으로 하는 이우영법보다 포괄적으로 콘텐츠 플랫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보다 많은 사업자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업계 이목이 쏠린다.

검정고무신 사태가 쏘아올린 ‘공정한 보상’ 문제에 공감하지 않는 이는 그 누구도 없을 테다. 문제는 관련 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창작자 권리만 생각하느라, 콘텐츠 유통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 충분한 숙고의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를 지켜보는 플랫폼들은 중복 규제 우려 등을 이유로 “애초에 출발선부터 잘못됐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장 지적되는 부분은 이 제정안 핵심인 사업자 금지행위를 규정한 제13조 내용이다. 해당 조항은 불공정행위를 크게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금지행위 ▲문화상품 창작·제작 기반 보호를 위한 금지행위 ▲법 위반사실 신고 및 분쟁조정 신청 등을 이유로 문화상품제작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 세 가지 유형으로 명시한다.

세부 내용 가운데 제3장 ‘문화상품 공급계약 및 금지행위’ 대부분은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 심지어 공정거래법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있는 사업자 간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보지만, 이 법안은 특정 기준 없이 사업자가 한 행위 전체를 규율한다는 점에서 제재 수위가 더 높다.

업계 입장에서는 규모에 상관없이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업자가 ‘갑’의 지위에 해당하므로 과도한 규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처 간 관할 충돌 역시 쟁점이다. 일반적인 시장규제 역할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수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문화산업 진흥 때문인 만큼, 이 법안을 통해 시장감시 역할까지 부여하는 입법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법안 내용에 따르면 문체부는 사업자가 시정명령을 불이행할 때 이행강제금 부여를 비롯해 과태료 부과,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다. 즉, 시장 규제에 있어 문체부가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다른 법안과 중복이슈도 존재한다. 현재 시행된 지 채 6개월도 안 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불공정 계약 조건 강요나 적정 수익배분 거부·지연·제한 등 제13조1항과 유사한 금지행위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한계들 때문에 지난주 회의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도 사실상 반대 의견인 ‘신중 검토’ 입장을 냈다. 그런데도 실제 회의 속기록을 보면 방통위 의견에 대한 활발한 토의가 오가기는커녕, 속전속결로 의결이 진행됐다. 법률안 설명부터 위원회 안 의결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공익을 위한 법을 발의하는 건 국회의원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제정 필요성만을 앞세워 그 법이 일으킬 부작용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는 건 다른 차원의 ‘직무 유기’와 같다. “어떤 이슈가 터지면 가장 먼저 매 맞는 건 플랫폼이다”, “국회는 플랫폼을 공공재로 여기는 것 같다”는 업계 비판에 정치권이 떳떳해지려면 먼저 이들에게 손 내밀고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포용력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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