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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통신 수난시대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정부가 연일 통신업계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통신사들이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정부에 이토록 ‘찍혔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요금제가 문제였다. 5G 중간요금제가 부족하다며 통신사더러 요금제를 또 내라고 재촉을 했다. 이용자들의 불만이 컸던 부분이니 이해는 갔다. 이미 5G 중간요금제를 한차례 출시한 지 일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통신사들은 난감해 했지만 말이다. 통신사들이 국민들에게 한달간 무료 데이터를 주겠다며 나섰다가 대통령실로부터 핀잔을 들은 것도, 어쨌든 실효성이 부족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어느 날 대통령이 통신 산업을 콕 꼬집어 비판한 뒤부터는 일이 좀 더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금융과 통신 분야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인 경쟁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 통신업이 과점 체제라 문제가 많다는 게 대통령의 메시지였고, 곧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시장 경쟁을 촉진하겠다며 ‘제4이통’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거들었다. 통신업계 주요 협·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 대한 현장조사에 돌입한 것이다. 보조금 담합 등 의혹을 조사하기 위함인데, 시점은 오묘했다. 공정위는 이번 현장조사 외에도 통신사들의 경쟁 제한과 소비자 권익 침해 행위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규제기관이 여기저기 찔러보며 잘못한 것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KT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차기 대표이사 선출 과정에 있는 KT는 최근 대통령실로부터 “주인이 없는 회사는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며 저격을 당했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들 일부가 KT의 대표 후보 선정이 내부 인사 위주로 이뤄진 점을 두고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난한 직후다. 사정이 어찌 됐든 소유분산기업인 KT의 대표 인사에 정부가 말을 얹어 개입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야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중간요금제가 부족했던 것도 맞고, 통신 시장에서 경쟁이 미흡했던 것도 맞다. 또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공정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통신사들은 5G 상용화 이후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5G 품질 불만이 여전한 데도 요금은 여전히 고가다. 이런 통신사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선 손쉽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통신도 ‘산업’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에 갑자기 새 요금제라든지 제4이통 진입을 유도하는 것은 산업적 관점에서 너무 섣부르다. 충분한 업계 의견수렴과 실태조사를 거쳐 정책을 도출하는 것이 맞다. 정책이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계산해보면서 말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통신산업의 규제완화를 강조하던 정부가 이제 와 다른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다.

이 모든 일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국민도 기업도 얻을 게 없어 보인다. 정부의 규제 타깃이 되면서 기업들은 사업 추동력을 잃었고 자연스레 주가도 정체되고 있다. KT만 해도 작년 10조가 넘었던 주가가 8조로 내려앉았다. 전세계 통신업계가 다음 먹거리를 찾는 데 몰두하는 동안 국내 통신업계는 정부 눈에 조금이라도 튀지 않기 위해 바짝 머리를 숙이고 있다. 뼈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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