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그들은 개인적인 생각을 버리고 집단적인 사고로 빠져들어야 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 속 구절이다. ‘1984’는 비인간적 정권인 ‘빅 브라더’와 그의 강력한 통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요즘 KT 대표이사(CEO) 인선을 두고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KT와 주주들에게 ‘빅 브라더’는 정치권인 듯 싶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KT의 CEO 인선을 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해 왔는데, 업계에선 대선 공신에게 줄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기 위해 KT를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종 4인 후보가 KT 내부 인사로만 구성된 것을 두고 여당이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대통령실은 “주인이 없는 회사는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결국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도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에서 “내가 더 버티면 KT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앞선 상황들을 보면 정치권 외압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정치권이 KT CEO 인선에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됐음에도 불구,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친여 성향의 인사를 KT 대표로 앉히려는 정치권의 후진적 관행은 반복됐기 때문이다.
실제 민영화 이후 KT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은 구 대표를 비롯해 이용경·남중수·이석채·황창규 등 총 5명이지만, 연임 임기를 다 채운 이는 직전 대표인 황창규 전 회장이 유일하다.
특히, 연임 도전을 중도 포기한 이용경 전 사장을 제외하곤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 2005년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재선임됐지만, 그해 11월 돌연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연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2008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해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취임 당시 “KT그룹을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라고 공언했던 구현모 대표가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윤 후보 마저 결국 물러난 가운데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에선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면 누가 올라도 허수아비 역할만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통신업계 관계자들과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윤 후보가 물러나면서 경영 공백이 우려됨에도 불구, 일각에선 내심 안심하는 기류가 포착된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윤 후보 개인의 역량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정부에 반하는 후보가 CEO 자리에 오르면 KT를 비롯한 통신업계 전반에 칼날을 휘두를 거고,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낙하산 인사라도 빨리 (KT CEO 자리에) 오면 좋겠다”라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들의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 ‘1984’은 주인공 윈스턴이 빅 브라더 정권을 끝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면서 끝난다.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이는 순간 KT가 지난 20년 동안 지켜왔던 ‘민영기업’ 타이틀이 깨지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빅 브라더 정권의 영향력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 이제 정치권 외압으로부터 벗어날 때다. 정부도 KT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며 쥐고 흔드는 촌스러운 행위를 그만둬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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