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메타, 아마존 등 쟁쟁한 빅테크들이 선전하는 지금, 한국 인터넷 기업들도 몸집을 키우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해외 플랫폼 위협 속에서도 자국 플랫폼들이 중심을 잡고 있는 곳이다. 이에 전세계 빅테크들과 맞설 수 있도록 경쟁력을 입증한 국내 플랫폼을 글로벌 무대로 세우고, 나아가 대한민국 새 먹거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 제기돼 왔다. 그러나, 내부의 위협이 더 큰 상황이 도래했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 장벽을 높이면서, 플랫폼을 향한 칼날이 매서워졌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현재 인터넷 플랫폼을 향한 규제 현황을 점검하고, 전문가들 진단을 들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새해부터 도입된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부터 이르면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카카오먹통방지법까지 올해도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 규제가 이어질 전망이다.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와 플랫폼들은 정부의 이같은 규제 강화 기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업계 안팎을 살펴보니 규제 강도나 시장 개입 필요성에 대한 입장은 제각기 달랐지만, 인터넷산업을 규제하는 목적이 ‘신산업 진흥’이 돼야 한다는 주장엔 국민 대다수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정부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개별 기업을 제재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장 실패를 막고 산업 전반이 성장할 수 있게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규제 위한 정부 시장 개입 필요성, 시민과 업계 ‘동상이몽’=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19~69세 일반 시민 1000명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 사업체 종사자 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가 인터넷산업을 규제하는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양측 의견이 일치했다. 일반 시민 경우, 응답자 65.8%가 정부 개입이 신산업을 진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업계 종사자 81.3%도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진흥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업계 내부에선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개입이 일관된 규제에 따른 시장 통제에 힘을 준 만큼, 새로운 시장을 진흥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나 입법부 결정이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관계부처는 경각심을 갖고 인터넷산업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플랫폼에 대한 정부 규제 수위에 대한 시민들 입장은 ‘강하다’(54.6%)는 의견과 ‘보통’(53.2%)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기존 산업과 인터넷산업 간 갈등에서 정부 개입이 바람직한지 묻는 말엔 56.2%가 시장 개입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현 정부 규제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업계 종사자들 생각은 어떨까. 이들은 일반 시민보다 규제 정도를 더 강하고 민감한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 장애 이후 정부는 플랫폼 규제 법안과 관련 조치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먼저 제2의 카카오 먹통 사태 방지를 위한 ‘카카오먹통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지난달부터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도 본격 시행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향후 플랫폼 기업결합(M&A) 심사기준도 강화하기로 했다. 무분별한 플랫폼 사업확장을 방지하겠다는 목표이나, 업계에선 가뜩이나 투자 혹한기인 시기에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 개입 여부에 대한 생각도 업계 종사자들은 일반 시민과는 정반대 양상을 띤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현 정부 규제가 강하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37.5%는 규제가 매우 강하다고 답변했다. 특히 응답자 중 50% 이상이 신구산업 충돌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전체 중 과반이 정부의 플랫폼 시장 개입에 찬성했던 시민 설문조사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결과다.
하지만 ‘규제순응비용’을 생각해보면, 서비스 이용자인 시민과 플랫폼 사업자인 업계 종사자 간 의견이 갈리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로 풀이된다. 규제순응비용이란 특정 산업에 대한 규제가 생길 때 기업이 해당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뜻한다. 규제가 많아지거나 과도해질 경우, 기업 입장에선 규제순응비용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이는 곧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거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통해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투자나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디지털강국’ 향한 기대감…글로벌 진출 위해 토종 플랫폼에 필요한 것=이번 조사에선 인터넷산업이 이미 국내경제 내 주요 산업으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그 중축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란 국민적 인식도 드러났다. 전체 시민 가운데 약 90%는 인터넷산업이 향후 5년간 더욱 발전할 것으로 판단했다. 응답자 60% 이상은 10점 만점에서 8점 이상 높은 점수를 주어 빠른 성장을 예견했다.
업계 종사자들도 국내 인터넷산업 발전 수준을 높게 보는 상태다. 응답자 87.5%가 인터넷산업 수준이 높다고 평가했으며, 응답자 67.2%가 8점 이상을 부여했다. 특히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인터넷산업 수준을 묻는 말엔 81.3%가 매우 발전했다고 답했다. 향후 5년간 전망 역시 이와 비슷한 결괏값이 도출됐다. 이는 지금 기술 진화나 서비스 변화가 우리가 체감하거나 예측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선 절반을 조금 넘는 응답자 62.5%가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했다. 시민 90% 이상이 현재 산업 동향과 미래 전망을 아주 긍정적으로 본 것에 비하면 다소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국내 인터넷산업 경쟁력에 있어 시민과 업계 간 인식 차는 시장 상황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체감했는지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산업은 타 산업군에 비해 경제 변화 영향을 많이 받는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 인터넷산업은 국내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해도 해외 빅테크 기업들과 같은 자본과 규모를 갖추지 못해 조그마한 경기 변동에도 곧바로 무너지기 쉽다. 특히 국내의 까다롭고 촘촘한 규제로 콘텐츠 다각화나 확장이 어려운 현실에서 국내 기반 없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기존 시장과 신산업 간 충돌이 일어날 때 해결에 나서는 정부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정부 규제는 갈등이 나타나면 대체로 즉각적인 정부 개입과 함께 국회를 통한 관련 법안이 마련되는 식이다. 그런데 법안 대부분은 기존 시장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신산업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한다는 비판에 자주 휩싸이곤 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등 제도를 도입해 규제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해당 규제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 기존 산업과의 갈등을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제도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