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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발자국] 4000년 전부터 시작된 ‘깨끗한 물’ 찾기…정수기의 역사

그동안 다양한 전자제품이 우리 곁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을 반복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기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그 이유를 격주 금요일마다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히포크라테스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듯한데요. 특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히포크라테스의 소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물을 끓이거나 숯을 사용해 불순물을 걸러 깨끗한 물을 마시려는 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됐는데요. 고대 산스크리트 문헌에도 ‘물을 끓여 거르면 불순물이 제거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이 무려 기원전 2000년 경입니다.

<출처=위키피디아>
<출처=위키피디아>

기원전 300년대 후반, 400년대 중반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 역시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요. 천을 사용해 침전물을 걸러낸 물을 치료용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소매, 즉 침전물을 거르는 이 천이 지금 정수기의 필터 역할을 하는 셈인데, 어떤 면에서는 정수기의 시초로도 볼 수 있는 것이죠.

현대식 정수기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0년대 초 미 해군이 개발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중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를 만들어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담수로 바꿔 사용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삼투압 현상이란 불순물 농도가 낮은 물이 농도가 높은 물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역삼투압 정수기는 삼투압 현상을 반대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힘을 가해 불순물을 거릅니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후반 상품화가 시작됐다고 알려졌는데요. 그렇지만 당시에는 일상에서 물을 구해다 먹는 게 흔했기에 곧바로 보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한참 후인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가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요. 이때 국내 정수기 업체도 다양해졌죠.

당시 유행했던 제품 중에는 ‘맥반석 정수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한 후 국내에도 상륙했는데요. 내부에 맥반석 필터를 장착해 물을 정수하는 제품이었는데요. 맥반석은 중금속 제거에 뛰어나고 미네랄 용출을 돕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당시 중산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맥반석 정수기 시장 규모만 1000억원에 이르렀을 정도였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좀 더 간소화된 형태의 정수기가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정수기는 대부분 일시불 구매 대신 다달이 사용료를 지불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유권을 이전받는 렌털 방식인데요. 이 렌털 방식은 1998년 등장했습니다. IMF가 발생하며 정수기 판매량이 확 줄자, 코웨이(당시 웅진코웨이)가 고안한 마케팅입니다. 오늘날 렌털 시장은 40조원에 달할 만큼 크게 성장했습니다.

정수기 시장은 앞서 언급한 역삼투압 정수기뿐만 아니라 ‘직수형 정수기’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역삼투압 정수기는 대부분 물을 모아두는 저수조를 가지고 있는데, 직수형 정수기는 직수관 필터를 거쳐서 물을 내보내기 때문에 저수조가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국내 정수기 시장에서 역삼투압 정수기와 직수형 정수기의 비중은 반반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맥반석 정수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역삼투압, 직수형 정수기의 인기를 뛰어넘을 다른 형태의 정수기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대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소매 역할을 할, 새로운 모습의 정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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