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해 정부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메타버스라는 정의되지 않은 개념부터 바로 잡겠다는 의미다. 다만 파열음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산업인 메타버스가 게임 관련 규제를 받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메타버스 안에서 게임물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게임법 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보는 업계 속내도 복잡하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메타버스 가이드라인이 연내 나올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신산업인 메타버스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연말까지 게임과 메타버스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 메타버스와 교집합이 많은 게임업계도 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해당 정책이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제각기 다른 전망을 내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14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데이터정책 컨트롤타워인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이하 데이터정책위)를 출범시켰다. 이날 공개된 총 13개 규제 개선과제 중에는 ‘확장가상세계(메타버스) 신 규제체계 마련’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데이터정책위는 게임물과 메타버스를 구분하기 위한 지침을 올해 안에 수립할 방침이다. 빠르게 성장 중인 메타버스에 대한 게임 규제 가능성이 관련 신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메타버스와 게임을 별개로 볼 것인지, 하나로 묶어 볼 것인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거진 논란이다. 현재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공간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게임과 비슷하다는 문제 제기를 받아왔다. 이것이 관련 업계에 민감한 사안인 이유는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정의할 경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의 강한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로부터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문을 받으면서 해당 논란이 재점화됐다. 만약 제페토가 게임으로 분류된다면, 가상화폐 ‘젬(ZEM)’을 현금화하는 기능을 삭제해야 한다. 게임법에선 이용자가 재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 모델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메타버스 생태계 뛰어드는 게임업계, “가이드라인 제작 환영”=지난 6월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과기정통부 이종호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메타버스와 게임을 구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남궁 대표는 “메타버스 관련 규제 이야기 등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좀 잘 살펴가면서 했으면 한다”고 이종호 장관에게 말했으며,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새롭게 대두되는 메타버스 영역이 기술적 형태나 외모가 게임과 닮았지만, 정책적으로 명확히 게임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메타버스를 신산업 전략을 채택한 카카오는 ‘카카오 유니버스’ 비전을 내세우는 한편, 계열사 넵튠은 오픈형 메타버스 플랫폼 ‘컬러버스’를 추진하고 있다.
게임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메타버스 탈 게임화를 추진하는 만큼,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분하자는 주장에 호응하는 분위기다. 현재 넥슨,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컴투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한 사업을 확장 중이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기존 게임과 크래프톤 프로젝트 미글루 메타버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플랫폼 내에서 크리에이터 툴을 활용해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탄생하고, 글로벌 오디언스를 상대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지닌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게임과 메타버스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도 “메타버스 연계 사업을 하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사업 방향을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어 환영한다”며 “뚜껑은 열어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전했다.
◆“규제 완화, 게임 차례는 언제?” vs “게임도 메타버스 열풍 가속화”=업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게임 분야에서도 현재 실정을 제대로 반영한 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과 메타버스는 명확하게 다른 부분이라 관련 정책을 다르게 가져가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게임 규제는 그대로 남겨두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답답하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게임 내 재화 현금화 규제는 2006년 사행성 게임으로 도마 위에 오른 ‘바다이야기’ 사태 때부터 본격화됐지만, 이후 산업계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일부 부정적 사례 때문에 게임 산업이 과거 규제에 묶여 있는 건 아쉽다는 지적이다.
반면, 메타버스 규제 완화가 게임업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불합리한 게임 규제는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며 “규모가 작은 게임사는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에 사활을 거는 경우도 있지만, 대형 게임사는 많은 장르 중 하나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설령 메타버스를 연계한 게임이 규제를 받는다고 해도 게임사가 존폐 기로에 설 정도로 큰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메타버스 산업에 적극 뛰어드는 게임사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신산업 규제 속도가 글로벌 트렌드와 발맞춰지면 많은 게임사가 메타버스 관련 개발이나 사업을 진행하는 데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학계 “플랫폼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게임이 될 수 없어”=전문가들은 메타버스 특성이 게임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해관계자 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메타버스와 법’ 저자인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메타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때 세 가지 요건을 유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민 교수는 “플랫폼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게임이 될 수 없다”라는 점을 들었다. 제페토와 이프랜드는 이용자가 활동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플랫폼일 뿐, 이 과정에 오락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게임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로블록스 사례를 제시하며 “크리에이터가 만들어낸 게임은 플랫폼과 구별해서 봐야 한다”며 “로블록스는 이용자에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용자가 로블록스에서 만드는 콘텐츠가 그 내용에 따라 게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것이지, 로블록스 자체가 게임인 것은 아니다”라며 국내에서는 로블록스를 게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메타버스에서 개인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논의에 포함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몇몇 개인이 콘텐츠를 통해 가상화폐를 벌고 수익이 생긴다고 해서 이를 게임으로 취급해 환전을 아예 금지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문체부가 메타버스에 대해 게임법 적용을 얼마나 자제하고 축소하는지가 가이드라인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