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연내 유료방송 채널 계약의 원칙과 평가 기준(가이드라인)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 상황을 고려한 규제가 최선의 정책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프로그램사용료 비율을 기본 채널 수신료의 60% 수준으로 인상하고, 정부가 프로그램 사용료 비율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2일 한국언론학회·한국미디어정책학회 주최로 열린 ‘콘텐츠 중심 미디어 생태계 재편을 위한 정책 개선 방안’ 공동 기획 세미나에서는 유료방송 채널 계약에 대한 정책과 방송산업 재원구조 재구조화 방안의 모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권호영 순천향대 석좌교수는 “현재 정책 당국에 의해 유료방송 플랫폼과 PP간의 프로그램 사용료 계약 가이드라인 개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 원칙 수립이 어려워 양자 간의 자유 계약에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 상황 고려한 규제가 최선의 정책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유료방송 채널 계약 정책을 살펴보면, 1995년 케이블TV 출범 이후 유료방송 플랫폼과 PP는 채널 공급과 그 대가인 프로그램 이용료에 대한 계약을 진행해 왔다. 당시 유료방송 플랫폼의 협상력이 PP에 비해 월등히 높아 정부에서는 PP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지속 추진했으나 실효성이 떨어졌다.
그는 “유료 방송의 낮은 수신료를 정상화하는 방안이 없었으며, 유료방송 플랫폼과 PP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는 방안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 12월 선계약-후공급이라는 채널 계약의 원칙과 채널 계약 평가기준 공개 등에 대한 명시가 이뤄지면서 유료방송 채널 계약 가이드라인 개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수신료 배분 원칙 수립 등이 쉽지 않아 대가산정위원회를 가동하더라도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후계약 선공급이라는) 지금의 관행은 말이 안된다”며 “유료방송 플랫폼 재허가 심사에 먼저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널 평가제도도 플랫폼 자체 시청율 배점을 낮추고 이를 PP와 공유해 평가 객관성을 답보하는 한편 통신서비스 결합 매출, 홈쇼핑 송출 수수료, 셋톱박스 임대료 매출 등 유료방송 플랫폼 전체 수입이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PTV의 PP 사업 진출 확대로 예상되는 불공정 거래 가능성에 대한 감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프로그램 사용료 비율에 개입할 수 있도록 방송법이나 저작권법을 개정해 근거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프로그램사용료 비율을 기본 채널 수신료의 60% 수준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해는 34% 수준이었다. 프로그램 사용료 비중에서 큐톤광고(PP가 유료방송사에게 제공하는 지역광고시간)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료방송시장의 대가 분쟁은 단순 사업자간 거래 관계를 넘어서는 시장 구조적 문제 내재화하고 있어 정책 대안 마련 및 분쟁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콘텐츠 투자와 성과에 기반한 대가 산정으로 실질적인 콘텐츠 산업 활성화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방송사업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은 했지만 성장세가 더딘 상황, 즉 성장 지체가 구조화돼 있다. IPTV 가입자 증가로 유료방송 플랫폼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방송산업 전체 성장을 견인했지만 여타 방송 사업자들의 성장은 정체돼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정된 재원 속 사업자간 약탈적 경쟁 구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유료방송 플랫폼과 지상파의 관계를 살펴보면, 지상파 시청 점유율과 콘텐츠 투자 감소에도 재송신 대가 수준은 지속 상승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가 산정 요인 중 하나로 작동하면서 투자 및 성과에 연동한 대가 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 PP는 유료방송 플랫폼에 시청점유율 상승과 제작비 투자 증가에 따른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낮은 프로그램 사용료와 광고 수익 한계로 투자비를 회수 못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결국 콘텐츠 제작과 투자로 인한 양질의 콘텐츠 생산, ARPU 개선, 사업자 수익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유료방송 플랫폼은 저가 수신료 체제를 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로 보완하며 사업자들 간의 분쟁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약 갱신 때마다 이같은 분쟁이 반복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시대에 유료방송 시장의 전통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업자 간 경쟁 양상도 변화됐지만, 여전히 전통적 규제 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규제 체계 정비 선행이 필요하다”며 “채널·콘텐츠 가치와 대가의 연동 시스템 구축과 프로그램 재투자 유인 제공할 수 있는 저가 유료방송 구조 탈피와 유료방송 동반성장 구조 형성을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공적 미디어 영역과 상업 미디어 영역의 분리는 필요하며, 공영방송의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BS 재원 구조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결국 다른 곳에서 이를 메꿔야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부는 저가 수신료 구조 개선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가 사회 속에 진행된 종합토론에는 김세원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팀장,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 이헌율 고려대 교수, 전범수 한양대 교수 등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김세원 한국방송채널협회 팀장은 “방송상품 할인 판매와 관련한 합리적인 거래관행 정립과 더불어 유료방송 채널 선계약-후공급 제도의 안착과 공정한 콘텐츠 대가산정 기준 수립 문제도 빠르게 해결해야할 과제”라며 “특히 콘텐츠 대가산정 기준 마련은 정부 혼자서 독단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업자들끼리 자율적으로 해법을 마련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난제였지만 다행히 최근 과기정통부가 선계약-후공급 제도 시행을 비롯한 유료방송 대가산정 기준 마련을 연말까지 마무리 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기대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유료방송사 그리고 그들에게 방송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사업자들이 적극 협력해서 정체된 유료방송 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상생의 묘안을 하루빨리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리스크를 안고 콘텐츠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이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제약을 해소해야 한다”며 “또 미디어콘텐츠를 관할하는 세 부처의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정치적인 이슈와 결부해 콘텐츠 진흥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합당한 콘텐츠 산정 기준 역시 플랫폼에 많이 기여하는 PP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인 시청률 이외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입증됐지만 바이럴, 그리고 미래세대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업에 몫이 돌아가는 산정기준이 필요하고, 원론적인산정기준보다는 상시적인 논의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에 많이 투자하는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