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CP 등 빅테크기업의 망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논의가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 이어 유럽연합과(EU)과 미국도 관련 논의를 본격화했다. 국내에선 이미 지난 2020년부터 CP가 합법적으로 망 이용료를 부담하는 법안이 6건 발의돼 있다. ISP의 착신독점력 무력화, 글로벌 테크 대비 협상력이 열위에 있는 상황을 감안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모아졌다. 다만 현재 여야의 대치로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망무임승차방지법이 나온 배경과 진행과정, 향후 전망 등을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일정 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의 망 이용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등의 이른바 ‘망무임승차방지법’과 관련해 주로 제기되는 우려가 있다. 계약 체결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업자간 사적 영역인 만큼, 법으로 간섭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글로벌 빅테크의 망 무임승차를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그 해답이 꼭 입법이냐는 것에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한다. 사업자들간 계약과 같은 사적 자치 영역에 있어 우리 법은 관여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적으로 개입이 꼭 필요한 상황이 있다. 시장이 ‘실패’했을 때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예를 들면 사업자와 사업자간 관계가 불균형한 나머지 한쪽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대등한 경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 법은 개입을 한다.
따라서 망무임승차방지법에 대해서도,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간 망 이용계약 문제가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할 영역인지 아니면 법적으로 규율 장치가 필요한 영역인지를 따지는 것이 향후 입법 담론에 있어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망무임승차방지법에 “사적개입 과도” vs. “시장실패 교정”
망무임승차방지법은 기본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망을 이용할 때는 망을 제공하는 사업자와 반드시 이용계약을 체결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6건의 망무임승차방지법 가운데는 ‘부당한 계약 체결 거부’ 또는 ‘부당한 계약상 차별’을 금지하거나 아예 ‘적정 망 이용대가 산정’을 의무화한 법들도 있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계약 체결이나 대가 산정을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이 모두 사업자간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을 꼭 반대하지 않더라도, 망무임승차방지법과 같은 법률적 강제보다는 사업자간 자율적 협의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힘을 싣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망 이용계약 체결이나 대가 산정에 있어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이 문제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소송을 치르고 있는데, 법원에서 타당한 결론이 나오면 거기에 따라 집행하면 되는 것이지, 성급한 법제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망무임승차방지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글로벌 CP가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부당하게 망 이용계약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장 실패’이며, 따라서 제도적 개입이 용인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 망 이용대가를 둘러싸고 넷플릭스와 소송 중인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지난 수년간 망 이용계약 협상에조차 응하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현행법(전기통신사업법)상으로는 거대 CP의 ‘무임승차’ 방지에 한계가 있다”면서 “CP가 ISP에 망 이용대가 지급을 거부할 경우, 이에 대한 제재 조치를 명시하고 있지 않아 글로벌 CP의 망 이용대가 지급 거부 행위를 견제할 법적 장치가 부재한 상태”라고 망무임승차방지법 필요성을 지적했다.
◆ 글로벌 대형 CP의 망 무임승차, ISP는 견제장치 없어
그렇다면 핵심은 글로벌 대형 CP의 ‘우월적 지위’가 실존하느냐에 있다. 과거에는 망을 차단할 힘이 있는 ISP가 게이트키퍼(gate keeper)로서 착신독점력을 가졌고, 그게 문제가 됐다. ISP가 인터넷 트래픽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이 탄생한 것도 ISP의 착신독점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생태계가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글로벌 대형 CP들이 유발하는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ISP의 망 투자 부담은 늘었지만, 이들 CP 중에선 오히려 망 이용대가를 거부하는 사업자가 나타났다. 오랜 기간 규제를 받아온 ISP는 그러나 더 이상 망 차단과 같은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 법만 해도 그렇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전기통신사업자로하여금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특정 CP의 망을 차단하는 행위가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의 경우 CP들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 대비 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되는 ISP들에 더 강력한 규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이나 넷플릭스처럼 글로벌 영향력이 큰 CP들의 경우 망 이용계약 협상을 거부한다고 해도 ISP 측에서 대응할 방법이 없다”면서 “현행법상 망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CP 입장에선 트래픽 품질이 조금 나빠지는 것일뿐, 이용자들의 원성은 ISP로 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회, 망무임승차방지법 공청회 예정…바람직한 방향은?
다만 망무임승차방지법 중에서도 망 이용계약 체결을 직접적으로 의무화한 조항 등 특정 조항들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회에는 총 6건의 망무임승차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공청회를 열어 관련 논의를 진행키로 했다.
국회는 서로 다른 망무임승차방지법들이 제시하는 사전규제 혹은 사후규제의 적합성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망 이용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것은 ‘사전규제’, ‘부당하게 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사후규제’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선 사전규제 대비 사후규제로 가는 것이 사적 개입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망무임승차방지법이 실현된다면 기준이나 조건이 예측가능한 것인지 여부가 중요하며,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규제 방향으로 가서 과도한 개입을 배제하고 시장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업계에 정통한 또 다른 관계자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론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겠지만, 일부 글로벌 CP가 정상적 협상을 거부하는 행태에 대해선 제도를 통해 대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정상화시켜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이들의 망 무임승차는 계속될 것이고 결국 인터넷 생태계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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