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거대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무임승차를 막는 이른바 ‘망무임승차방지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은 현재 국회에 총 6건이 발의돼 있는데, 여야 의원을 불문하고 추진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법안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선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방위는 이달 중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 계획인데, 여기에도 망무임승차방지법은 상정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쟁점법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쟁점법안이란 말 그대로 논쟁거리가 남아 있어 추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야 불문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망무임승차방지법이 쟁점법안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뭘까. 최근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통상마찰’ 논란이 그 배경으로 보인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을 둘러싼 통상마찰 논란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 법안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시작됐다. USTR은 최근 ‘2022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망무임승차방지법에 대해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통산자원부에 같은 취지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도 알려졌다.
USTR이 염려하는 지점은 이것이다. 현재 국내에 발의된 망무임승차방지법은 ‘일정 규모 이상 CP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반드시 그에 따른 이용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이라는 것은 대형 사업자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 이용계약을 체결하라는 것은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에 사실상 망 이용대가를 내라는 의미다. USTR은 이런 측면에서 망무임승차방지법이 구글이나 넷플릭스, 즉 자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구글’과 ‘넷플릭스’가 대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 기업’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네이버도 카카오도, 메타도 디즈니도 국내 ISP에 망 이용대가를 직간접적으로 내고 있다.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 사업자는 구글과 넷플릭스뿐이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은 다른 국내외 기업들이 이미 지불하고 있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 중인 사업자에 대한 법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자들이 다만 구글과 넷플릭스일 따름이다.
어쨌든 미국 정부가 나섰으니 통상마찰로 비화될 가능성이 큰 건 아닐까? 이와 관련해 판단 기준으로 삼을 만한 유사한 사례가 있다. 바로 ‘구글갑질방지법’이다. 이 법은 ‘앱마켓 사업자가 앱 개발사에 자사 결제시스템(인앱결제) 등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당시 구글은 자사 앱마켓인 구글플레이에서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인앱결제를 의무화하고 수수료를 낼 것을 요구했고, 우리 국회는 이처럼 거대 사업자가 독점적 지위를 내세워 불합리한 계약조건을 강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
구글을 타깃으로 한 이 법안을 USTR은 가만히 놔뒀을까?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지난 2020년 11월 USTR은 “한국에서 논의되는 인앱결제강제금지법이 특정 기업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보기술산업협회 한국지부인 ITI코리아는 이 법에 대해 “WHO 협정과 한미 FTA를 위배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에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실제 구글갑질방지법은 국회 과방위를 통과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구글갑질방지법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법안의 통상마찰 논란을 검토했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면서 본회의에 상정·통과시켰다. 당연한 결과였다. 해당 법안은 구글뿐만 아니라 국내 앱마켓인 원스토어·갤럭시스토어도 적용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수 전문가가 “외국 기업만 차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닌,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일반법’이어서 내국민대우를 해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조차 당시 구글의 앱마켓 독점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미 하원을 통해 발의되는 상황이었다.
USTR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미국 무역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자국 기업의 이득을 조금도 뺏기고 싶지 않은 보호논리가 작동했을 뿐이다. 오히려 구글갑질방지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USTR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구글갑질방지법과 망무임승차방지법의 입법 목적은 거대 사업자가 막강한 지위를 앞세워 특정 계약을 강요하거나 또는 계약을 거부하는 행위를 막는 것이고, 이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모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외국 기업 차별’을 논한다면, 이는 지나친 ‘자국 기업 감싸기’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USTR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통상마찰 논란의 문제점은 결국 소모적인 논쟁만 키워 정작 법안에 대한 논의는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현재 구글갑질방지법이 시행 과정에서 계속 잡음을 내는 이유다. 구글은 ‘특정 결제수단 강제’가 법적으로 금지되자, 인앱결제 내에서만 제3자결제를 허용하고 여기에 수수료를 매기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갔다. 구글의 꼼수로 인해 구글갑질방지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망무임승차방지법도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는 해묵은 통상마찰 논란보다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더 촘촘하게 설계하는 논의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