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 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신한라이프의 TV광고 모델로 파격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사람이 아닌 ‘AI 인플루언서’. 처음엔 젊고 발랄한 아가씨로 알았는데 실제 사람이 아닌 버츄얼(가상) 인간이란 것을 알고 대중들은 더 큰 흥미를 가졌다.
해당 CF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 영상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말 ‘오로지’에서 따온 ‘로지(Rosy)’라는 이름의 이 모델은 2020년12월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국내 최초로 공개하면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금융권에서 이같은 가상인간 모델 발탁이 가지는 의미는 적지않다. 가장 눈여겨볼 것은 가상인간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예상보다 적다는 것. 특히 ‘신뢰’와 ‘안정감’이 절대적인 컨셉인 금융회사의 광고 모델로 가상인간이 등장한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파격이다.
그렇다면 대중은 언제부터 가상인간에게 ‘신뢰’를 보내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지난 2016년 3월 열렸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간의 대국을 꼽는다. AI가 인간 지능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후 몇년간 산업전반에 AI 기반의 인텔리전스화가 획기적으로 이어지면서 어느순간 사람보다 더한 ‘신뢰’를 받게 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가상인간'에 대한 MZ(밀레니엄+Z세대) 세대가 보인 긍정적인 반응이다. 디지털에 매우 친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 ‘가상’은 알파고-이세돌 대국과는 무관하게 매우 친숙한 단어다.
새로운 미래 경제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의 마케팅 툴로써, 또한 신뢰가 부여된 가상인간 기반의 혁신적인 마케팅 플랫폼으로서 ‘가상인간’은 그 유효성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마침내 등장한 ‘AI 은행원’… 단순 은행 안내에서 대출 상담까지 빠르게 진화
이같은 ‘가상인간’ 대한 대중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금융권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커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AI 은행원’(Banker)를 꼽을 수 있다.
일부 은행들을 중심으로 ‘AI 은행원’의 개념이 탄력을 받으면서 확산되고 있다. ‘AI은행원’의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기술적 진화 속도는 대체로 빠른 편이다.
점포 혁신의 차원에서 처음에는 내점 고객의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응대하기위 컨시어지 수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실제 창구 업무 직원을 대신할 수 있는 역할로 기능이 보다 높게 설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실제 은행원으로부터 금융 상담을 받는 고품질의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업무 자동화’(RPA)측면에서 본다면 이제 어느 수준까지는 ‘AI은행원’에게 맡겨도 될 수준으로 진화될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챗봇 등 AI기반으로 제공되는 수준의 디지털금융 서비스가 이제는 사람으로 형상화된 이미지의 ‘AI 뱅커’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왔다.
이와함께 ‘AI 뱅커’의 개념을 이용해 유튜브 등 영상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가상 인간’서비스나 AI기반의 콜센터(AICC)의 상담원 등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둔 가상인간 서비스가 보다 보편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AICC가 매우 중요한 마케팅 인프라인 보험업계에선 ‘AI 플래너’의 등장도 조만간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은행권에서 ‘AI 은행원’의 개념을 빠르게 정착시키고 있는 은행중 하나로 신한은행이 손꼽힌다.
지난 2020년 4월, 인공인간에 대한 영업점 적용을 검토한 신한은행은 이후 지점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범 적용에 나섰다. 이어 올해 3월, 기존 보다 진화된 ‘AI 은행원’의 역할을 선보였다.
신한은행의 ‘AI 은행원’은 현재 화상상담서비스인 디지털데스크를 통해 주로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데스크, 디지털 컨시어지 등 디지털 금융기기에서 고객맞이 인사, 메뉴 검색의 단순 안내 서비스에서부터 계좌 조회 및 이체 등 간단한 금융 서비스까지 범위를 점차 확대해왔다.
신한은행은 AI은행원의 서비스 고도화 과정을 통해 ▲입출금 통장 개설 ▲예‧적금 통장 개설 ▲잔액 및 잔고 증명서 발급 등 총 40여개 금융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특히 ▲신용대출 신청 ▲예금담보대출 신청 등 대출 업무까지도 포함시킴으로써 AI 은행원의 대고객 업무의 범위가 점차 핵심으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은행 창구 직원을 보조하는 보조역할이 아니라 직업 고객을 응대하고 처리하는 대체재의 역할로 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처럼 고객과 직원들과의 화상상담을 통해 금융 업무가 가능한 ‘디지털 데스크’를 무인형 점포인 디지털 라운지 등 100여개 지점에 배치하고 전국적으로 확대해, 점포 통폐합으로 인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은행, ‘AI금융 비서’ 3단계 기술혁신 고도화 추진
그동안 국내 은행권은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점포 혁신을 위한 ‘화상상담서비스’에 AI뱅커를 투입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모바일, 개인 금융비서 업무 모델로 확장하는 방안도 깊게 연구하고 있다.
다만 보다 정확하고 고품질의 서비스를 위해서는 ‘AI 금융비서’ 서비스는 지금보다 더 진화된 ‘음성인식기술’과 AI기반의 빅데이터 분석기술이 결합돼야만 구현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의 경우, ‘KB-AI 금융비서’에 중점을 두고 서비스 확산을 준비중이다. AI를 기반으로 사람처럼 대화가 가능한 AI Human(가상인간) 기반의 금융 전문비서 플랫폼 구축이 최종 목표다.
국민은행측은 금융에 특화된 한국어 AI언어모델 및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대화 구성하고 금융서비스 모듈을 연결했으며, 모든 채널에서 동일한 질문에 동일한 답변이 구현될 수 있도록 플랫폼화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AI 금융비서 전략은 3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1단계 키오스크, 2단계 모바일 서비스를 거쳐 3단계는 개인화 서비스로 한 층 더 고도화하는 것이다.
현재 국민은행은 1단계 ‘키오스크’수준에서 약 1300개 정도의 필요 서류와 주변 시설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일반 상담과 서류 안내, 객점 안내 KB모바일앱 이용 연계 QR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은행은고객과의 비대면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NLU(자연어처리)와 NLG(자연어생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앞서 국민은행은 고객 관점 AI 기술을 위해 금융AI센터에서 자체 인력을 확보하고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자체 기술 ‘KB-STA’를 개발했다. KB-STA는 KB국민은행 금융AI센터가 직접 개발하는 AI 기반 한국어 텍스트 처리 기술(NLP)을 총칭하는 말이다.
◆삼성증권, ‘버츄얼 휴먼’ 방식… 유튜브 채널 응대
삼성증권이 올해 5월, 국내 증권업계에선 처음으로 ‘버추얼 애널리스트’(Virtual Analyst)를 활용한 유튜브 콘텐츠를 시작했다.
‘버추얼 애널리스트’는 삼성증권이 자사의 실존하는 애널리스트의 모습과 음성 등을 AI기술로 학습시켜 이미지로 만든 가상인간으로, 텍스트만 입력하면 실제 애널리스트가 방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투자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고객들은 실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형상화된 동영상을 보면서 투자 정보에 몰입할 수 있다.
삼성증권측은 “애널리스트들이 종목이나 시장연구, 기관고객 세미나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에도 버추얼 애널리스트를 통해 시의적절한 유튜브 방송을 할 수 있게되어 리서치 효율과 고객만족도 모두 높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들이 방송 출연을 위해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고 보다 리서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삼성증권은 이같은 MZ 취향 저격 콘텐츠를 적극 개발함으로써 지난해 말 19% 수준이던 유튜브 채널 MZ세대(35세 미만) 시청자 비중을 4월말 현재 40% 수준까지 확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살펴본 봐와 같이, AI뱅커, AI금융비서 등 다양한 형태로 불리지만 국내 금융권에서 AI를 활용한 금융 인력의 대체 전략은 여전히 실험적이다.
AI은행원이 오류를 일으켰을때 이에 대한 배상조치나 책임소재를 따질 '설명가능한 AI'(XAI) 기술도 아직은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법적인 검토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단계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AI은행원이 아직 사람을 100%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음성인식 기술 등 몇몇 부분에서 2% 부족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데 수십년, 수백년이 걸릴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간극을 좁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현재 기술로 구현 가능한 98%의 범위내에서 AI를 활용한 인력의 업무 역할 분담 또는 보조 기능의 활성화를 통한 효율성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금융권은 판단하고 있다.
올해 뿐만 아니라 2023년에는 AI은행권과 같은 AI 기반의 채널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본 기사는 <디지털데일리>가 7월초 발간한 [2022년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에 게재된 내용을 재편집한 것으로, 편집사정상 책의 내용과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