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디지털데일리>가 7월초 발간한 [2022년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에 게재된 내용을 재편집한 것으로, 편집사정상 책의 내용과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차세대 시스템’(Next Generation System)이라는 단어는 지난 20여년간 꽤나 묵직한 그 무엇으로 존재해왔다. 수백억,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IT로 응축된 또 다른 ‘시대 정신’으로 인식했고, 프로젝트의 성패에 떠나 사업 자체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도 적지않았다.
2022년에도 여전히 이러한 묵직함이 있을까.
무게의 경중을 떠나 이제 ‘차세대 시스템’사업이 주는 관점은 과거와는 많이 면에서 결이 달라졌다. 심각한 시대적 과제가 아니며, 또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과제가 아니라 금융회사가 혁신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중 하나로 보는 유연한 인식도 늘어나고 있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및 캐피탈, 저축은행 등 금융업종마다 인식은 각각 다를 수 있겠으나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다. 3회에 걸쳐서 짚어본다. <편집자>
-‘클라우드’ 전략으로 IT전략 무게중심 변화… ‘코어뱅킹 혁신’ 방법론에도 이견
- 하드웨어 변화보다 디지털혁신 구현위한 SW 전략 고민
당초 은행, 증권, 보험 등 주요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유닉스 전환이 지난 2010년을 전후로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또 다른 차세대 환경으로의 교체시기가 2020년 이후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2020년~2023년사이 ‘10년 주기’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또 한번의 차세대시스템 구축 러시는 예상했던 것 만큼은 활발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바꿔생각하면 그것은 어쩌면 IT에 시대 정신까지 담아야한다는 과도한 ‘부담’에서 금융권이 마침내 해방된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시간이 흐르면서 차세대시스템 사업에 대한 구현 방식과, 역할 및 기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생성된 결과일수도 있다.
이처럼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으로 보는데는 나름대로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2022년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는 더 이상 ‘정답’이 없다. ‘차세대시스템은 꼭 이렇게 가야한다’는 식의 ‘모범 답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우 성의없어보이는 결론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결과적으로 이렇게 흐르고 있다.
이는 기존의 레거시(Legacy)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시장에 대응할 수 있어 굳이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필요까지는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고, 또 한편으론 차세대시스템 사업이 아니어도 또 다른 혁신의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지난 1990년대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종합온라인’시대에선 시스템의 ‘안정성’이 최고의 가치였다. 전산센터 입구 전광판에 ‘전산 무중단 000일 달성’이란 문구가 자부심으로 빛나던 시절이다.
이어 2000년대들어 인터넷에 기반한 웹의 시대로 IT인프라 환경이 전환되기 시작했다.격변이 몰아쳤다. 이제 금융 전산시스템은 안정성외에 또 다른 가치를 추구했다. 웹을 통한 다채널 금융서비스, 보다 신속한 금융상품의 개발, 시스템의 유연한 확장이 가능한 개방형 다운사이징 차세대시스템의 핵심 키워드로 바뀌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메인프레임 기반의 주전산시스템은 대부분 유닉스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또 다시 지난 10여년간 모바일 플랫폼 시대와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그리고 클라우드(Cloud)시대로 핵심 키워드가 바뀌면서 금융권 차세대시스템에 대한 시대적 역할과 전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기능이 재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막막하다. 현재 시점에서 5년뒤 또는 10년뒤를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고, 애플이나 네이버 등 거대 빅테크기업들이 ‘서비스로서의 뱅킹’을 어떻게 설정할지도 가늠할수도 없다.
현재로선 클라우드 환경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기위해 기존 주전산시스템 환경을 유닉스에서 x86으로 전환하는 등 혁신 이슈들이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보다는 금융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과 방법론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에 대해 과거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굳이 대규모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도 IT혁신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론들이 나오고 있고, 어쩌면 이렇게 물흐르듯 대응하는 것이 ‘차세대시스템’의 개념으로 새롭게 정의될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점에서 클라우드의 등장이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전략에 미치는 충격은 적지않다. 기존 차세대시스템을 통해서만 새롭게 구현이 가능했던 혁신적 성과들중 상당수는 이제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구현할 수 있게됐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전환에 따른 ‘제3자 리스크’가 중요한 현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대응책을 찾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은행권에서는 ‘하이브리드(Hybrid) 클라우드’를 핵심 IT인프라 구현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다.만약 이같은 다양한 옵션을 통해 IT혁신의 성과를 신속하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면 금융회사는 더 이상 차세대시스템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란 논리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방법론과 관점이 차이다.
클라우드의 가치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또 한번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는 중차대한 IT과제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플랫폼 금융’을 보다 역동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유연한 인터페이스, 보다 신속한 융합형 상품 개발, 데이터 분석과 초개인화 금융서비스의 원활한 구현, 외부 시스템과의 원활한 연결성 확보 등 금융회사가 IT인프라 혁신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이를 기존처럼 빅뱅식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통해 해결하느냐, 아니면 다른 방식을 찾느냐의 선택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내 금융권에서 주목하고 있는 두 가지 핵심 IT사업이 있다. 하나는 신한은행이 지난해 5월부터 42개월의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프로젝트 사업 ‘더 넥스트(The NEXT)’이고, 또 다른 하나는 KB국민은행이 이제 추진을 준비하고 있는 ‘코어뱅킹 현대화(Core Banking Modernization)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