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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0의전쟁④] 사상 첫 ‘크립토 전쟁’…비트코인, 기부금이자 제재 회피수단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눈과 귀가 현장에 쏠려 있다. 전쟁은 비극적이지만 국가와 국가 간 대립의 최종적 형태인 전쟁을 통해 시대상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실제 사상자와 물리적, 인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버 공격, 금융 결제망 제한, 가상자산을 통한 모금 및 탈 중앙 금융거래, IT기업의 비대칭 정보 해결 움직임 등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변화된 전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디지털데일리>는 5회에 걸쳐 이번 전쟁으로 인한 디지털 세계의 영향을 알아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교전이 계속되면서 우크라이나에선 기부금으로, 러시아에선 금융 제재 회피 수단으로 가상자산이 쓰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및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금융 제재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등 가상자산 관련 업체들의 행보도 교전 상황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역사상 첫 ‘크립토(가상자산)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러시아서 급증한 비트코인 수요…거래소들 “러시아 일반 국민까진 차단 못해”

2일 관련 외신을 종합하면 러시아는 최근 금융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상자산에 주목하고 있다. AP통신은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국제 사회의 금융 제재와 그에 따른 루블화 가치 폭락에 대응하기 위해 금, 가상자산 등에 의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에서 배제하는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은행 및 금융기관들이 사용하는 글로벌 결제망이다. 또 지난 1일 우리나라 정부도 미국의 제재 대상인 주요 러시아 은행 7곳 및 자회사와의 금융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결제기업인 비자와 마스터카드도 러시아 은행 네트워크를 차단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를 강화하는 데 따른 조치다.

금융 제재로 다른 국가로부터 돈을 받기 힘들어진 러시아에선 대안으로 가상자산이 부상했다.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어느 국가에 종속되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돈이자, 스위프트 같은 결제망과 상관없이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 송금을 기반으로 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더블록은 최근 1000BTC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갑 수가 급증한 것에 대해 “러시아 금융 제재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더블록이 코인메트릭스 데이터를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1000BTC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갑 수는 7% 급증했다. 또 100BTC 이상 보유하고 있는 지갑 수도 1.3% 증가했다.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는 지갑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러시아에서 비트코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선 러시아 루블화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자산 거래가 늘기도 했다. 더블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루블화 기반 거래량은 일평균 1100만달러 수준이었으나, 침공 이후 일평균 3580만달러로 크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는 금융 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으나, 현재는 가상자산이라는 회피처가 보편화된 영향이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8곳에 러시아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코인데스크가 1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후오비, 쿠코인, 바이비트 등 대형 거래소에 서신을 보내 러시아 사용자 계정을 차단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러시아에 있는 무고한 사용자들의 계정까지 차단하는 것은 가상자산의 존재 가치와 상반된다는 게 근거다.

바이낸스는 “가상자산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재정적 자유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상자산에 대한 접근을 일방적으로 막는 것은 가상자산이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조치다. 무고한 사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글로벌 금융 제재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용자에 대해선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전했다.

코인베이스도 비슷한 입장이다. 코인베이스 측은 디크립트에 “일방적인 거래 금지는 전쟁으로 인해 법정화폐 리스크를 겪고 있는 러시아 일반 국민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코인베이스가 밝힌 것처럼 현재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이에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루블화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또 러시아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요 가상자산 가격도 상승했다. 2일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가격은 지난주에 비해 각각 15%, 11% 오른 상태다.

◆우크라이나엔 기부금으로…정부가 지갑 주소 공개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한 가상자산 지갑 주소.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한 가상자산 지갑 주소.
다만 가상자산이 금융 제재 회피 수단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선 정부가 직접 가상자산 지갑 주소를 공개하면서 가상자산으로 기부금을 전달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테더(USDT)로 기부금을 받는다며 지갑 주소를 공개했다. 이후 해당 주소로 기부금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 찍힌 우크라이나 기부 거래기록 수가 2만5000건을 넘어섰다. 기부액은 약 1611만달러(한화 약 194억원)에 이른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1일 폴카닷(DOT) 지갑 주소도 공개했다. 앞서 개빈 우드 폴카닷 창업자가 “우크라이나가 폴카닷 기부금을 받으면 500만달러치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갑 주소를 공개한 이후, 우드 창업자는 트위터를 통해 29만8367달러 규모 폴카닷(DOT)을 기부한 거래기록을 인증했다.

기부금 행렬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저스틴 선 트론 창업자 역시 개빈 우드 창업자의 행보를 따랐다. 선 창업자는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트론 기부 지갑 주소를 공개하면 100만달러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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