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일부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기원)들이 40억원이 넘는 연구비 잔액을 교수 개인별 통장에 적립해 개별 회의비‧출장비 등에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과기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3개 과기원이 운용 중인 ‘잔고계정’ 규모가 40억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잔고계정은 민간 위탁 과제 종료 후 남은 연구비를 교수 개인 별 통장에 적립했다가 기간 제한 없이 사용하는 제도다. 개인연구지원비, 산업체재투자통합과제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인건비 셀프지급’ 등 일부 경우만 제외하면 연구책임자가 기간‧용도 제한 없이 쓸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은 연구비를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 탐색 활동에 활용한다는 게 본래 취지지만, 연구윤리 저해 우려가 크다. 일반 연구비와 달리 사용기한의 제한도 없고, 용처 제한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비상금 통장’에 가깝다.
실제 조 의원이 이 제도를 운용 중인 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작년부터 올해 9월까지 잔고계정 집행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7311건 중 59%인 4325건 지출이 회의비‧출장비였다.
이런 문제 때문에 KAIST는 작년에 잔고계정 폐지를 결정했다. 내‧외부 감사에서 회계처리 부적정, 허위집행 등이 적발됐고, 법률 자문 결과 제도 자체의 위법 소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연구비가 남으면 기존 연구비 계정의 사용기한을 한시 연장해 연구 탐색 활동에 사용하기로 했다.
특히 가장 많은 잔고계정(160개, 26억1500만원)을 운용 중인 GIST는 무리한 규정 완화로 곤욕을 치렀다. 2019년 퇴직자의 잔고계정 사용을 허용하고 추가 완화까지 시도했는데, 당시 총장이 정년(2021년 8월)을 앞두고 있어 ‘노후 대비’ 논란이 일었다.
잔고계정이 과기원에만 있는 제도라는 점도 문제다. 과기원과 마찬가지로 공공‧민간 위탁 과제를 모두 수행하는 출연연에는 잔고계정 제도가 없다. 남는 연구비는 자체 정산하거나 기관운영비로 흡수한다. 과기정통부 직할 연구기관들도 연구비 잔액을 반납하거나 기관 수입금으로 흡수하고 있다.
조승래 의원은 “연구비 집행잔액을 관리하는 방법이 기관 별로 제각각인데다, 일부 기관에서는 연구윤리 저해 우려가 있는 제도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연구비가 연구비답게, 연구자의 연구 활동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