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통신회사와 투자회사로 쪼개진다. 창립 37년만의 변혁이다. 기존 통신회사와 더불어 신설되는 ‘SK스퀘어’를 중심으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가 승부사로 나섰다.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인수합병(M&A) 행보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아마존의 전략적투자자 참여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SK텔레콤은 12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T타워 본사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 등 주요 안건을 의결했다. 출석 주식 수 기준으로 인적분할 안건의 찬성률은 99.95%, 주식 액면분할 안건의 찬성률은 99.96%를 기록해 기관과 개인 주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번 인적분할은 유무선 통신 기반 SK텔레콤과 반도체 중심 ICT 투자에 집중하는 SK스퀘어로 나뉜다. 두 회사는 다음달 1일 공식 출범한다. 현 SK텔레콤은 주식 매매거래정지 기간(10월26일~11월26일)을 거쳐 11월29일에 SK텔레콤과 SK스퀘어로 각각 변경상장 및 재상장된다. 분할 비율은 SK텔레콤 0.607, SK스퀘어 0.392다.
업계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SK스퀘어다. M&A 승부사로 불리는 박정호 대표가 신설 투자회사의 대표로 가게 되면서 제대로 물을 만났다는 평가다. 박 대표는 과거 반도체 위기론이 한창일 때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 기업 분할을 앞두고 이달 초에는 미국을 찾아 직접 투자자 모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SK스퀘어의 전략적 주주 구성 계획도 밝힌 상태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SK스퀘어의 주주로 참여할 가능성이 손꼽힌다. 박 대표는 이날 임시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마존이 SK스퀘어의 주주로 참여하는 안을 논의 중”이라며 “기대 이상으로 잘 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기존 회사(SK텔레콤)도 그렇고 SK스퀘어도 그렇고 전략적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며 “해외 IR(회사 홍보활동)을 다녀보니 주주들 첫 마디가 ‘Thank you(고맙다)’일 정도로 (투자자들이)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고 기대를 표했다. 다만 SK스퀘어의 첫 투자처를 묻는 질문에는 “차차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현재 SK텔레콤은 아마존과 이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마존과 e커머스 사업 혁신을 위해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아마존은 SK텔레콤 자회사 11번가의 기업공개(IPO) 등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성과에 따라 일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신주인수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 분할 후 양사 합산 기업가치 약 28조원
존속회사 SK텔레콤은 2020년 15조원 수준의 연간매출을 2025년 22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아울러 유무선 통신 및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와 디지털 인프라 분야 등 3대 핵심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SK텔레콤은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구독서비스 ‘T우주’와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새롭게 출시한 상태다. AI 플랫폼 ‘누구’는 월 이용자 1000만명이 넘는 플랫폼으로 성장시켰으며, 이 밖에 마이크로소프트(MS) 등 5G MEC 기반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관리 등 디지털인프라 분야 초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신설회사 SK스퀘어는 반도체 및 ICT 플랫폼 사업 투자를 통해 현 26조원인 순자산가치를 2025년 약 3배에 달하는 75조원으로 키운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반도체, 미디어, 보안, 커머스 등 주요 포트폴리오 자산을 기반으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비상장 투자회사(PE)와 달리 상장사로서 소액 투자자들에게도 공동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시장의 기대도 높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K스퀘어에는 SK그룹의 핵심 플랫폼 및 콘텐츠 자회사가 포진돼 있어 일반 지주사와 비교하기 어렵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를 거치면서 SK스퀘어의 자회사가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하면 지주 업종 내에서도 독보적인 프리미엄을 받을 전망”이라고 했다. 분할 후 양사의 합산 시가총액 범위는 21조원~28조원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 역시 “SK텔레콤의 본업가치와 장기적으로 정상화될 자회사들의 가치를 합산해 기업가치 30조원 부여가 가능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분할 전후 기업가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자회사들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합산 기업가치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