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 120시간' 발언에 '크런치 모드'와 '포괄임금제' 등 그간 논란이 돼왔던 게임 및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19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업계를 만났더니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을 호소했다"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곧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윤 전 총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실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고 해명했다. 여기에 2주 전 청년스타트업 행사에서 스타트업 업계에서 나온 이야기를 인용했다는 설명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일지라도 현장 노동자들이 원한다면 노사 간의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예외를 뒀으면 좋겠다는 취지였으며, 본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발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 120시간 발언 그 자체는 게임·IT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연일 화두로 오르내리고 있다.
그간 업계 전반에서 나쁜 관행으로 지적되어온 '크런치 모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이라는 부분은 게임·IT업계 전반의 개발자 근로 환경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됐다.
크런치 모드란 신작 출시나 업데이트 시즌을 앞두고 야근과 연장근무가 포함된 집중 업무 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근무 외 시간을 희생하며 수면과 위생, 기타 사회활동까지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하며 연장 근무를 하는 식이다. 이는 주로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크런치 모드의 발생 이유는 상시적으로 업무량이 많은 게임업계의 특성, 시스템 오류와 버그 등 예상치 못한 변수 발생, 퍼블리셔 사업부나 회사 등에서 지시한 게임 변경 요구 등이다.
그나마 크런치 모드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재택근무 시행 등으로 인해 2020년에 들어서며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곳곳에서는 필요에 따라 아직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잠재워지면 다시 크게 운용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크런치 모드는 개선 혹은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 야근이 잦은 게임 개발자 몇몇은 윤 전 총장의 발언이 아쉽다고 말한다. 윤 전 총장이 인터뷰를 할 당시 포괄임금제라도 함께 언급했다면, 해당 발언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이 되진 않았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포괄임금제에서는 실제 일한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시간외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매월 급여에 포함해 일괄지급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포괄임금제를 채택해왔으나, 2019년부터 서서히 폐지시켰다. 현재 포괄임금제를 채택 중인 게임사는 네오위즈, 크래프톤, NHN 등이다. 다만 NHN은 2022년 1월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지난해 10~11월 판교 지역에서 조사한 'IT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에 따르면, 응답자 809명 중 약 46%가 "포괄임금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32%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고, 47%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업계 종사자는 "윤 전 총장이 '주 120시간 근무'를 언급할 당시 스타트업 청년들의 말을 인용했다고 하는데, 지난 8일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 참여한 스타트업들 중 게임을 다루는 곳은 없더라"며 "게임 프로젝트 개발자는 때에 따라 초과근무 필요성을 느낄 순 있어도, 극소수를 빼고는 주 120시간씩 일해야 할 필요성까진 느끼지 않는다. 개발자를 그렇게 일하게 만드는 곳 또한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