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링 이종현기자] 국내 정보보안 기업들에게 있어 상반기는 ‘비수기’다. 통상 3~4분기, 특히 4분기에 실적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상반기 적자를 하반기 흑자로 메꾸는 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이 많다. 주요 고객인 공공기관의 사업 수주로 인한 매출·영업이익이 하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하반기 쏠림 현상은 ‘산업의 특성’으로 이해되는 동시에 정보보안 산업계의 성장을 가로막는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반기나 돼서야 실적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다. 특히 상장기업의 경우 이와 같은 문제가 더욱 부각된다.
솔루션 부문 매출 성장이 실적을 견인했다. 솔루션 부문 매출은 38억6000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7.1% 늘었는데, 작년 말 공인인증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전자서명법 시행에 따라 금융기관의 사설인증 솔루션 수요가 증가한 덕분이다.
이동통신3사의 본인인증 애플리케이션(앱) ‘패스’에 인증서 기술을 제공한 아톤은 패스 사용량이 높아질수록 이익을 얻는 구조다. 전자서명법 개정 이후 패스의 사용량이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인데, 패스로 얻는 수익과 이를 레퍼런스 삼아 다양한 고객사례를 확보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구축 사례로는 광주은행이 있다. 올해 초 아톤은 76억원 규모 광주은행 차세대 스마트뱅킹 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 사업으로, 통상 아톤의 한해 매출액이 300억원 내외인 점을 눈에 띄는 실적이다. 오는 8월 시행되는 금융 마이데이터서 공동인증서(구 공인인증서) 외 전자서명이 사용될 여지가 열리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부정론도 있다. 아톤의 작년 연간 실적은 전년대비 악화됐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0.7%, 49.7% 줄었다. 여행 수요 급감으로 주요 캐시카우인 ‘티머니 카드’의 매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까지 코로나19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티머니 카드에서 줄어든 매출·영업이익을 다른 사업 부문에서 보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란지교시큐리티, 자회사 탓에 1분기 적자=지란지교시큐리티는 별도 기준으로 아슬아슬하게 흑자를 달성했다. 매출액 47억6000만원, 영업이익 1억원이다. 전년동기에는 1억9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연결 기준으로는 매출액 109억원, 영업이익 –33억4000만원으로 적자다. 이는 자회사인 에스에스알과 모비젠이 각각 1억2000만원, 28억2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따른 결과다.
모비젠은 2017년 지란지교시큐리티에 인수된 이후 지속적인 1분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2019년, 2020년 모두 26억~2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반기 적자를 하반기에 만회하는 구조로, 2018년부터 작년까지 18억3000만원, 21억5000만원, 8억2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흑자로 사업을 마감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불안요소는 있다. 작년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연결 기준 23억5000만원의 적자로 사업을 마감했다. 상반기에 누적된 적자를 하반기에 만회하는 기존 방정식이 깨졌다.
이는 자회사 에스에스알의 실적 악화가 원인이다. 에스에스알은 작년 23억8000만원의 적자를 냈다. 협력업체의 폐업으로 외상매출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면서 적자가 발생한 것. 회사 측은 일회성 원인이므로 올해부터는 다시 흑자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1분기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에스에스알·모비젠을 인수한 이후 사상 최대 매출액임과 동시에 최저 적자를 보였다. ▲2018년 1분기 매출액 76억원, 영업이익 –41억원 ▲2019년 1분기 매출액 83억원, 영업이익 –38억원 ▲2020년 1분기 매출액 80억원, 영업이익 –45억원 등을 기록한 바 있다. 매출액 대비 큰 적자는 부담스럽지만 상반기 적자는 지란지교시큐리티로서는 일상적인 흐름이다. 작년 에스에스알의 협력업체 폐업과 같은 특이사항이 있지 않다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3법 수혜기업 파수, 지속하는 적자는 풀어야 할 숙제=보안기업 파수는 1분기 매출액 62억6000만원, 영업이익 –18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다른 정보보안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파수에게 있어 1분기 적자는 일상적인 흐름이다. ▲2018년 매출액 52억2000만원, 영업이익 –16억6000만원 ▲2019년 매출액 53억3000만원, 영업이익 –15억3000만원 ▲2020년 매출액 54억4000만원, 영업이익 –19억1000만원 등을 기록했다. 문제는 2017, 2018년 흑자 이후 2년 연속 적자로 사업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작년 파수는 매출액 364억원, 영업이익 –12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2019년 36억2000만원 적자에 이은 2년 연속 적자다. 당초 흑자 달성 실적을 공시했지만 사업보고서에서는 적자였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전환사채매수청구권 16억5000만원이 임직원 급여로 인식됐다는 것이 파수 측 설명이다.
지속하는 적자는 파수가 풀어야 할 숙제다. 파수가 강점을 보이는 문서보안(DRM)은 코로나19로 재택·원격근무가 활성화됨에 따라 관심이 크게 늘어난 분야로 꼽힌다. 작년에는 이와 같은 기대감을 숫자로 보여주지 못했는데,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DRM이 안정적인 캐시카우라면 ‘개인정보 비식별’은 파수의 미래 먹거리다. 개정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전자통신망법)에서는 개인정보에 일정 수준의 비식별 조치를 해 ‘가명정보’로 만들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파수는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분야서 레퍼런스를 갖춘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정부 차원에서 가명정보 결합·활용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가 비식별 조치를 미흡하게 해 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시장이 형성되면서 비식별 조치 분야 선두 기업인 파수에게 많은 사업적 기회가 올 것으로 보인다.
비식별 조치 솔루션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은 약점이다. 레퍼런스 면에서는 파수가 가장 앞서고 이지서티가 뒤따르고 있다. 이밖에 스파이스웨어, 데이타스 등이 시장에 진출했다. 남다른 경쟁력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솔루션에 대한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가운데 파수가 지닌 이점은 큰 조직 규모다. 비식별 조치는 필연적으로 개인정보 교육·컨설팅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타 기업은 제품은 내놨지만 컨설팅을 제공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곳이 다수다. 여러 기업들이 법에 대한 이해도 부족 등을 이유로 데이터 활용을 꺼리는 상황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해당 분야에 오랜 투자를 해온 파수가 남다른 영향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매출만큼 증가한 적자··· 돌파구 마련 필요한 라온시큐어=파수가 데이터 3법의 수혜기업이라면 라온시큐어는 전자서명법의 수혜기업으로 기대를 모은다. 기대를 충족하듯 파수의 매출액 상승은 가파르다. 하지만 동시에 적자도 확대되면서 안정적이지 않은 성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라온시큐어는 올해 1분기 매출액 73억1000만원, 영업이익-18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 상승만 본다면 고무적이다. 라온시큐어는 지난 2016년 매출액 167억원에서 ▲2017년 212억원 ▲2018년 246억원 ▲2019년 304억원 ▲2020년 371억원 등을 기록했다. 5년새 매출액이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늘어난 매출액과 함께 성장하던 영업이익은 40억2000만원에서부터 2019년 21억2000만원, 2020년 –35억2000만원 등 급감하기 시작했다.
라온시큐어의 매출 상승 및 적자의 배경은 신사업에 대한 투자가 있다. 2018년 기준 매출액 9억4000만원, 당기순이익 9000만원에 그쳤던 라온화이트햇은 작년 매출액 67억8000만원, 당기순이익 24억3000만원으로 성장했다. 2019년부터 실적에 잡히기 시작한 라온에스엔씨도 매출액 17억4000만원, 당기순이익 1억2000만원에서 작년 매출액 66억원, 당기순이익 3억1000만원으로 증가했다.
라온화이트햇, 라온에스엔씨가 성장을 보였음에도 적자를 낸 주요 요인은 미국법인에 있다. 라온시큐어가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법인 디지털 트러스트 네트웍스는 작년 당기순이익 –29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디지털 트러스트 네트웍스의 손상차손은 35억원에 달한다.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적자가 지속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라온시큐어가 투자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전자서명 기술에서 언제 매출이 발생할지도 미지수다.
작년 LG CNS와 함께 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가 진행하는 모바일 공무원증 사업자로 선정, 연초 구축을 완료했지만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 성격이다. 분산 식별자(DID)는 미래 기술로 손꼽히는 분야 중 하나지만 여전히 대다수 기업·기관 및 이용자는 공동인증서를 사용하고 있다. DID를 통한 매출 발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쏠림’ 해결 노력하는 지니언스,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 갱신하나 = 네트워크접근제어(NAC) 및 엔드포인트 탐지 및 대응(EDR) 솔루션을 갖춘 지니언스도 1분기 적자를 피해갈 순 없었다. 매출액 47억3000만원, 영업이익 –4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소폭 늘었고 적자는 줄었다.
단순 수치상으로 본다면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2020년 1분기 지니언스의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39.9%나 늘었던 것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신호다. 지니언스 관계자는 “작년 1분기에는 2019년 4분기 매출 중 일부가 이연되며 실제 사업 성과에 비해 큰 실적을 달성했다”며 “올해는 이연 매출 없이 실제로 달성한 매출”이라고 말했다.
지니언스는 작년부터 다수 정보보안기업과 마찬가지로 상반기까지 적자를 기록하다가 3, 4분기에 흑자를 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대비 적자폭은 타 기업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하반기에 실적이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 지니언스의 설명이다.
정보보안기업들의 실적이 하반기에 쏠리는 주요 원인은 주요 고객인 공공기관의 사업이 하반기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에 지니언스는 공공기관 사업을 제외한 제품 매출을 비수기인 상반기에 집중하도록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실적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는 NAC·EDR 기술력을 갖춘 지니언스이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하다. 지니언스는 작년 가트너가 발표한 2020년 NAC 마켓가이드서 대표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 4월에는 이스라엘 종합건설사에 NAC를 공급하는 공급하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EDR 분야서도 국내 최대 EDR 사업인 NH농협은행 사업을 따낸 바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전환에 공을 들인 것이 주효했다. 그동안 구축형 제품을 선호하던 공공시장에서 SaaS 제품 도입의 물꼬가 트이는 중이다. 구독형인 SaaS 매출이 늘어날수록 매출 쏠림 현상은 더욱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NAC와 EDR 모두 정보기술(IT) 인프라에 대한 가시성을 기반으로 한 제품이다. 지니언스는 해당 기술력을 바탕으로 운영기술(OT) 솔루션을 준비 중이다. 캐시카우인 NAC와 차세대 먹거리 EDR에 더해 OT 보안까지 진출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하겠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