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IT기업 디지털 전략 관련 관계자의 경험담이다. 상황을 조금 설명하면 이 관계자는 한 금융사의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자연스럽게 관계부서와의 협조 등을 위해 미팅자리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오고가던 덕담이 끝나자 대부분 관계자들이 “디지털 부서는 디지털에만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겠다”는 의사 표시를 직,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디지털만 하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디지털이 금융권의 화두가 된지도 이제 3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말로만 디지털이 아니라 일선에서의 디지털 접목이 생존과 직결되고 있다. 이는 반대로 디지털 분야에서 이제 실적을 내야한다는 의미다. 실적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업에서 실적이란 결국 숫자다.
매출이 되었건 사람을 줄이건 기업은 숫자로 실적을 평가한다. 디지털 부서 역시 실적을 내기 위해선 기존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와 결합해야 하고 이는 현업과의 긴밀한 공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금융사에선 이러한 디지털이 자신들의 영역, 즉 상품이 되었건 서비스가 되었건 아니면 인프라가 되었건 업무에 영향을 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디지털과 상품, 디지털과 자신의 업무, 부서는 따로따로라는 인식이 문제다. 디지털을 일종의 조직논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금융사들의 전략에도 원인이 있다. 디지털을 일종의 유행으로 받아들이고 외부에서 전문가들을 모셔오기 바빴지만 정작 조직 내에 디지털 인력과 조직, 문화를 융합 시키는 데에는 소홀했던 탓이다. 여기에 조직에서의 ‘정치’가 작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결국 “디지털만 하세요”라는 말은 아직도 디지털이 금융사의 일선 담당자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전히 무엇인지 불분명한, 애매모호한 디지털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불안감도 작용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차세대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IT부서와 현업의 조율이 우선된다. 개발 과제를 정하고 구현방법을 논의할 때 현업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해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비용이 투자되는 만큼 경영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소통을 요구하기도 한다.
현업입장에선 간만에 IT부서와 치열한 의견개진이 벌어지는 장이기도 하다. 금융사에 따라선 현업에서 담당자가 차출돼 차세대시스템 TF에 파견되기도 한다. 해당 부서의 이익과 IT부서의 업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사업과 관련해서 디지털 부서와 현업, 디지털 부서와 IT부서 간 차세대시스템 구축과 준하는 치열한 협의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돌아볼 문제다. 결국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은 경영진 개인의 성과도 아니고 특정 부서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른바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디지털 전환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