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1990년대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 기술 기반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그때, 한국이 모험을 시작했다. 이제는 시대 흐름에 맞춰 역사 속으로 스러지는 지금의 2G, CDMA(코드분할다중접속)가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누구는 무모한 도전이라 말했고, 혹자는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선구자라 불렀다.
한국은 유럽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제쳐두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주요 국가 어디에서도 상용화하지 않은 CDMA 방식을 차세대 이동통신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라는 점 때문이다.
이동통신 변방국이나 다름없던 당시, 한국의 도전에 냉소를 보내는 곳들도 많았다. 이에 CDMA 상용화를 진두지휘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엔지니어들은 매일 밤을 새웠다. 시스템 운용 시험을 거친 후, 교환기부터 단말기 개발, 기지국 최적화 등을 해냈다. 서울 기지국 200여개를 최적화하기 위해 미국 통신회사 GTE와 매일 전쟁 같은 작업을 치렀고, 서비스 중단한 상태에서 해야 해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꼬박 업무에 매진했다. 결국 1996년 1월3일 SK텔레콤은 첫 CDMA 서비스를 시작하고, 한국은 CDMA 종주국으로 우뚝 섰다.
2G 서비스를 기점으로 한국은 이동통신 기술 종속국에서 기술주도국으로, 이동통신시스템과 단말기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출강국으로 변화했다. SK텔레콤이 시작한 2G 서비스가 국가경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국내 시스템, 단말 제조사에 기술을 이전해 기술의 산업화, 장비 국산화 및 수출,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 연구 결과에 따르면, CDMA 사업은 국내 26만명 고용창출 효과와 13조1000억원의 수입 대체효과를 가져왔다.
이태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CDMA를 통해 한국이 국제통신표준에서 양대산맥 하나를 제시했으며, 이를 지금까지 끌어왔다. 이것이 기반이 돼 3세대, 4세대 이동통신기술로 진화할 수 있었다”라며 “직접 개발하지 않았지만, 상용화와 보급 과정에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CDMA를 개발하면서 한국은 통신강국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전했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실제로, 1984년 국내에서 상용화된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통신 시스템과 단말기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당시 이동전화 수요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신규 가입자가 매년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디지털 방식의 이동전화를 도입하기로 하고, 통신기술 주도국이 되겠다는 목표 아래 1990년 CDMA 기술개발을 정보통신 관련 국책과제로 선정했다. 이후 ETRI 중심으로 시스템을 개발하다, 1993년 7월 SK텔레콤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산하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을 발족해 국제 표준의 CDMA 방식 개발로 전환했다.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CDMA 방식의 첫 시험통화에 성공했고, 1996년 1월 인천‧부천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세계최초 CDMA 상용화를 기록했다. SK텔레콤은 CDMA 최초 상용화 이후 8개월만에 전국 6대 도시로 상용망을 확장했고, 이듬 해 1997년 초에는 전국 78개 도시로 확대했다.
여기에 더해 SK텔레콤은 1998년 1월 최적의 음질을 구현한 EVRC(Enhanced Variable Rate Coder)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통화성공률 99.5% 이상, 전국 커버리지 100%라는 이동통신 품질을 고객에게 제공했다.
이어 SK텔레콤은 전국에 저속 무선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망을 구축하고, 수도권에는 64Kbps 속도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56Kbps급 모뎀을 이용한 유선인터넷보다 빠른 속도다. 2000년 10월에는 144Kbps 데이터 서비스를, 2002년 1월에는 2.4Mbps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서비스를 발표했다. 세계 첫 동기식 IMT-2000 시대를 열었다는 설명이다.
◆공중전화 대신 호주머니에서 꺼낸 전화기, 키패드 닳도록 보낸 문자=2G를 통해 사람들은 음성과 문자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엄지손가락으로 키패드를 눌러 문자메시지를 쉴새 없이 주고받는 이들을 일컫는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가격도 저렴해졌다. 1세대 이동통신보다 저렴한 가격을 통해 이동통신 서비스 대중화를 이끌었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줄 서는 풍경은 줄어들고, 벽돌폰은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작아졌다.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가 개막했다.
1997년 8월 SK텔레콤은 단문메시지 서비스를 내놓았고, 1999년 정보검색‧이메일 송수신 등이 가능한 엔탑(n.Top, 현재 네이트) 서비스를 출시했다. 2001년에는 세계 첫 이동전화 동영상 상용서비스를 선보였다. CDMA 방식 무선데이터 접속 로밍 서비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본인 핸드폰으로 음성통화, 무선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적 환경 변화 속에서 SK텔레콤은 2002년 11월 프리미엄 멀티미디어 서비스 ‘준(June)’을 출시했다. 텍스트 중심 무선인터넷을 멀티미디어 서비스로 발전시킨 것으로, 이동전화를 통해 주문형 비디오‧음악, 화상전화, 인터넷, TV방송 등을 제공했다.
하지만, 통신기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3G, LTE에 이어 지금의 5G 시대까지 열렸다. 25년간 운영된 2G는 망 노후화로 고장 급증, 예비부품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장애 위험을 안고 가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언제라도 통신망이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2G 서비스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미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이 2G를 종료으며, 미국 AT&T‧버라이즌도 2G를 접었다.
한국은 25년만에 과거의 영광인 ‘2G’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주게 됐다. 011 시대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