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한국과 일본의 세계무역기구(WTO) 맞대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WTO 규범에 위반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WTO 예외조항에 포함한다는 주장이다. 양국은 WTO 일반이사회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일본 기업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일본도 잘못은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은 ‘극일(克日)’을 역설했다.
23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는 한국이 제기한 일본의 수출규제에 관한 안건을 24일(현지시각) 다루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 1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며 관련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백색국가에서 빠지면 일본에서 수입하는 대부분 물품을 일일이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지난 4일부터는 반도체 소재 등에 쓰는 제품 3종 수출 허가를 강화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이유를 ‘신뢰 훼손’이라고 했다. 신뢰 하락 이유는 처음엔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의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이라고 했다. 이후 대북재제 위반 의혹, 수출관리 제도 미흡 등으로 태도를 바꿨다.
WTO는 우리는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수석대표로 보냈다. 일본은 야마가미 신고 외무성 경제국장을 내세웠다. 일본 수출규제 건은 총 14건의 안건 중 11번째다. 양측은 지난 9일(현지시각) 이곳에서 열린 WTO 상품 무역 이사회에서도 논쟁했다. 일반이사회와 상품 무역 이사회는 강제성 있는 결정을 하는 곳은 아니다. 전 세계 여론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우군을 많이 확보해야 제소 때 승소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 여론전과 별개로 일본과 양자 대화를 지속 촉구했다. 또 일본이 예고한 백색국가 시행령 개정 의견수렴 마감일인 이날(24일) 우리 정부 의견서를 공개했다.
산업부 성윤모 장관은 “일본은 한국의 재래식 무기 캐치올(catch all) 통제가 불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는 한국 수출통제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양국 수출통제협의회가 개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의 수출통제 제도를 신뢰 훼손과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한국 수출통제 관리는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기관간 긴밀한 협업 체계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게 운영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국제 규범에 어긋나며 글로벌 가치사슬과 자유무역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이미 시행 중인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근거 없는 수출 통제 강화조치는 즉시 원상 회복해야 한다.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역시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 장관은 “이번 문제 해결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 전자, 반도체, 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 왔다”라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고 했다.
한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측은 일본 기업 한국 재산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3일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들은 미쓰비시 한국 재산 강제매각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압류한 미쓰비시 한국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이 대상이다. 일본제철 피해자는 이미 국내 압류 재산도 강제매각을 진행 중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일본 수출규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길 원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의 방일과 방한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