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들이 IPTV의 케이블TV 인수합병(M&A)에 반대하고 나섰다. 유료방송 플랫폼이 이통사가 운영하는 IPTV로 독과점 될 경우 시장 지배력이 유료방송 시장에 그치지 않고 지상파 등 콘텐츠 사업자들에게까지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방송협회는 26일 IPTV의 케이블TV 인수합병에 대해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통신사들이 방송플랫폼 시장을 독과점할 경우 이들에게 실시간 방송과 VOD를 공급하는 지상파·개별PP 등 대다수 콘텐츠 사업자들의 협상력이 대폭 약화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콘텐츠 제값받기가 불가능해져 콘텐츠 제작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에 빠질 것이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또한 협회는 방송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지상파 등 콘텐츠 생산 주체들의 재원 확보를 어렵게 해 궁극적으로 국민 편익과 방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플랫폼 입지 강화로 협상력 상실 우려=지상파 방송사들은 2016년 SK텔레콤이 CJ헬로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속내는 협상력 약화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과거 IPTV가 없던 시절에는 지상파 콘텐츠 재전송료 개념 자체가 없었다. 직접수신율이 낮은 상황에서 케이블TV의 재전송이 지상파 방송사들에게도 필요했고 협상력에서 지금처럼 우위를 점할수도 없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IPTV로 유료방송 시장에 들어오면서 협상구도가 변했다. 지상파 방송 재송신대가라는 개념이 생겼다. 케이블TV는 관행과 광고시장의 기여 등을 들며 협상하려 했지만 다플랫폼 시장에서 협상 주도권은 지상파 방송사로 넘어갔다. 분쟁을 일으키기 싫어하는 통신사들이 지상파 요구를 수용하면 케이블TV가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끊임없이 재송신 대가 인상을 추진하면서 통신사들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가입자당대가(CPS)는 280원으로 시작해 IPTV의 경우 400원까지 상승했다. 지상파 몫이 커질수록 누구가는 손해를 봐야 했다. 모바일IPTV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들과 협상결렬로 방송을 송출하지 않고 있다.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경우 매번 협상에 난항을 겪다가 극적으로 타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졌다.
과거 통신사들은 케이블TV에 비해 협상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통신사들의 협상태도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3사 중심의 유료방송 시장 재편은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달가울리 없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 실현…전체 미디어 시장 자금유입 기대=통신사들이 케이블TV 인수합병에 나서는 이유는 모바일 등 결합상품 경쟁력 강화 등도 있지만 가입자 기반을 확대해 미디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도 담겨있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MWC19에서 “유선 1000만명과 무선 1700만명 총 2700만명을 확보하면 자체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는 최소 규모라고 본다”며 “SK텔레콤의 목표는 합병을 통해 1위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체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300~400만 가입자 기반으로는 콘텐츠 투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통신3사 모두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넷플릭스, 구글 등의 사례에서 보듯 콘텐츠와 플랫폼의 대형화, 경쟁력 강화는 현재 미디어 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M&A로 콘텐츠 제값받기가 불가능해져 콘텐츠 제작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만 전체 방송 콘텐츠 업계에 대한 수신료 배분이 낮아질 가능성은 적다. 이미 케이블TV의 경우 PP에 수신료의 25% 가량을 배분하고 있고 통신사들이 M&A를 실제 추진할 경우 규제당국의 조건부과가 예상된다. 오히려 PP에 돌아가는 몫이 커질 수 있다. 통신사 역시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한 여러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16년 SK텔레콤은 M&A 이후 5년간 5000억원 콘텐츠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푹+옥수수는 되고 유료방송 M&A는 안돼?=이처럼 유료방송 M&A에 반대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지만 자신들이 중심이 된 계약에는 관대하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최근 SK텔레콤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텔레콤의 옥수수와 지상파 연합의 푹을 결합한 통합 OTT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통합법인 출범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SK텔레콤은 약 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콘텐츠 제작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통합플랫폼을 통한 지상파 콘텐츠의 해외시장 진출도 지원한다.
통합 OTT플랫폼은 개방을 지향하지만 이미 종합편성과 CJ ENM은 논의 단계에서 배제됐다. 현 시점에서 지상파 이외의 주요 CP들의 참여여부는 미지수다. SK텔레콤은 다른 PP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지만 통합법인의 중심세력은 지상파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표면적으로는 방송의 공공성과 국민편익을 내세워 M&A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중심이 된 계약에는 관대한데다 전체 콘텐츠 산업 활성화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