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LG유플러스 중심의 케이블TV 인수합병(M&A) 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유료방송 1위인 KT가 M&A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료방송 시장이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1일 유료방송 업계에 따르면 KT가 케이블TV 3위 사업자인 딜라이브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료방송 시장에는 딜라이브와 CJ헬로가 매각을 추진 중이다. CJ헬로는 2016년 SK텔레콤과 M&A 논의를 진행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허 결정으로 최종 무산된 바 있다. CJ헬로는 지난해 말 다시 M&A 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파트너는 LG유플러스다. 가격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양사간 M&A 논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텔레콤은 M&A와 관련해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그렇다보니 매각에 가장 적극적인 딜라이브는 오히려 공중에 뜬 상태다. 이달 중순경 CJ헬로의 딜라이브 인수관련 실사는 마무리 됐지만 시장에서는 CJ헬로가 딜라이브를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딜라이브의 M&A 파트너로 KT가 급부상 했다. KT는 유료방송 시장 1위 사업자이다. 그동안 족쇄였던 합산규제가 일몰되면서 점유율 규제도 사라졌다. 일단 현행법상 케이블TV 인수 걸림돌은 없다. ◆ 유례없는 3개 방송 플랫폼 보유…합산규제 없다고 가능할까?=최근 시장에서는 KT와 딜라이브가 M&A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유료방송사 M&A는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만약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하게 되면 KT그룹은 IPTV, 위성, 케이블 등 3개 플랫폼을 확보하게 되는 유일한 사업자가 된다.
이미 위성과 IPTV 2개 플랫폼을 경영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KT다. 현재 규제 공백 상태지만 방송의 다양성, 공정경쟁, 콘텐츠 수급 차별 등을 감안할 때 규제기관이 한 그룹이 3개 플랫폼을 갖게 해주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KT는 과거 SK텔레콤이 CJ헬로 인수합병 추진 시 방송의 공익성 및 공공성 훼손, 지역방송의 고사, 이용자 선택권 축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SK텔레콤을 향해 날렸던 화살이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 ◆ 규제공백 틈탄 KT의 승부수는 존재감 부각에 합산규제 해소?=이러한 상황에서 KT의 딜라이브 인수 추진은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국회에서 재논의 되려고 하는 합산규제 재도입과 관련한 논의를 차단하는 것이다. 최근 종료된 과방위 국감에서 여러 의원들은 유료방송 시장에서의 혼탁한 경쟁상황을 지적하며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견을 물었다. 합산규제는 일몰당시 과방위 차원에서 재논의 한 번 없이 지나갔다. 국회 내에서도 규제 재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디어 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KT 입장에서는 합산규제 재도입은 막아야 한다. KT가 어렵다면 KT스카이라이프도 있다. KT와 딜라이브간 M&A가 성사된 이후 합산규제가 도입되면 33% 초과 가입자에 대한 임의매각이 이뤄져야 한다. 시청자 피해 등을 감안할 때 M&A 성사 이후 규제 재도입은 쉽지 않다.
또 하나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IPTV와 케이블TV간 M&A 논의에서 KT라는 기업의 이름도 걸쳐놓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실적 악화에 5G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양사의 M&A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KT는 합산규제와 관련해 KT만 M&A 시장에서 배제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통신사와 케이블TV간 M&A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KT 역시 잠재적 후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디어 사업강화에 대한 의지는 LG유플러스, SK텔레콤 뿐 아니라 KT도 강하다. 굳이 나서서 “우리는 관심없다”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그만이다.
◆ KT 참전, 통신-케이블 M&A에 부정적 영향 미칠까=반면, 딜라이브는 마음이 급하다. 내년 7월이면 대출만기가 다가온다. 이제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M&A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딜라이브는 단순히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KT와 M&A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PTV와의 결합이 어렵다면 위성(KT스카이라이프)과의 결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KT스카이라이프 자체는 점유율 규제를 받지 않는다.
LG유플러스는 CJ헬로와 협상중이고 SK텔레콤은 팔짱만 끼고 바라보고 있다. KT가 운신의 폭이 제일 좁기는 하지만 가릴처지가 아니다. KT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딜라이브의 적극적인 구애에 KT가 응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찌됐든 시장에서는 순서가 틀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만약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하게 될 경우 합산 점유율은 37%를 넘게 된다. 반면 SK텔레콤이 티브로드를 인수해도 점유율은 24%밖에 안된다. LG유플러스 역시 CJ헬로를 인수하면 24% 정도가 된다. 37%는 방송시장 3분의 1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공정위와 방통위의 결정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공익성, 지역성, 공정경쟁 등 방송의 특수성과 공정위의 과거 판단 등을 감안할 때 KT 중심의 M&A는 성사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016년 공정위가 SK텔레콤 CJ헬로 M&A 불허의 근거는 지역에서의 경쟁제한성이었다. 공정위 판결은 통신사가 케이블은 인수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됐다. 아직까지 공정위 판단에 변화는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났고 3위인 LG유플러스의 경우 1~2위 사업자와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가정하게 CJ헬로 인수가 타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통신 3위인 LG유플러스가 공정경쟁, 다양성 측면에서 규제 허들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 순서가 뒤바뀔 경우 규제기관 허들을 넘기가 더욱 힘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KT가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SK텔레콤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딜라이브는 물론, 주요 MSO들도 M&A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블TV 산업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
◆ KT 합산규제 역풍 맞을 수도=현시점에서 KT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가 KT에 역풍으로도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신경민 더불어 민주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합산규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여야 할 것 없이 화두를 던진 셈이다. 물론 법안이 발의됐다고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방위는 법안 통과와 관련해 대표적 불량 상임위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KT와 딜라이브의 M&A 추진이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어찌됐든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는데 제대로 논의하기도 전에 제도공백을 틈타 법안 자체를 무력화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KT와 딜라이브간 논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다”며 “합산규제 법안이 발의돼 있고 논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