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닭의 죽음이 재밌냐!”
‘배민다움’이 난관을 맞았다. 배달의민족의 마케팅 행사 중 하나인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동물권 운동가들의 반발을 샀다. ‘치믈리에’는 치킨과 소믈리에의 합성어로, 와인 감별사처럼 치킨의 맛과 향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뜻한다. 배달의민족 특유의 B급 정서와 패러디를 상징하는 행사로 평가 받았으나, 운동가들은 이 행사가 ‘생명경시’ ‘동물 죽음 희화화’ 등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동물권 운동가 10여명이 행사장 무대에 난입했다. 이들은 “치킨은 살 안쪄요, 치킨은 죽어요” “이 맛은 30일짜리 병아리 맛” 등 피켓을 들고 기습 시위를 폈다. 시위는 특정 단체가 아닌 개별 운동가들이 모여 게릴라성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동물권(Animal rights)은 비인간 동물도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다.
개식용 반대론자들은 ‘개는 특별한 동물’이라는 지점을 근거로 논지를 펴는 경우가 많지만, 동물권 운동가들은 개를 포함 소 닭 돼지를 모두 같게 본다.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는 육식을 모두 일관되게 반대한다. 국내에서 크게 세력화를 이룬 적은 없으나. 최근 대학가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그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에게 있어 배민의 이번 행사는 애견인들이 개고기 감별 행사를 보는 시선과 유사한 셈이다. 실제로 이번 기습 시위에서 한 운동가는 “동물 사체 감별사라니” 라는 피켓을 들었다.
대표적인 동물권 보호단체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배민 치믈리에 시험은 닭의 죽음을 유희화, 희화화한다는 점에 대해 전혀 고려가 없는 행사”라며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종차별적 행위이자, 도덕적인 관념 부족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종차별주의는 비인간 동물에게 가해지는 종(種)에 의한 차별을 뜻한다.
아울러 배민의 또 다른 대표적 마케팅인 ‘배민 신춘문예’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배민은 말놀이 마케팅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육식에 대한 카피가 너무 과하다”며 “특히 ‘박수칠 때 회 떠놔라’ 같은 카피를 지하철 광고 등에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육식 희화화가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긴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17일 광화문에서 개식용 반대 시위를 주최한 단체다. 개 농장에서 폐사한 강아지 11마리 사체를 들고 추모 퍼포먼스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시위 방식이 극단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지연 대표는 “개농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진실성 있고 타당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온건한 시위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지만 적나라한 현재 상황을 알리기엔 쉽지 않다”며 “정부의 책임 방기를 강하게 규탄하는 의미를 담은 시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시기가 초복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치믈리에 기습시위가 합법 테두리 밖에서 이뤄진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 행사의 경우 사유지에서 진행되므로 집회 신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측면도 있다.
한편, 배달의민족 측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기습 시위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기울여 함께 준비해온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고, 무더운 날씨에도 행사장을 찾은 수백명의 참가자에게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다"며 "정당성이나 합법성에 결여된 채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입장문은 "'동물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배달의민족 구성원 중에서도'생명에 대한 존중'에 반대할 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시위대가 문제 삼은 '동물 죽음 희화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음 치믈리에 시험, 신춘문예 심사 기준 등에 변화가 있냐'는 질문에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 것은 존중하며, 회사 차원에서 고민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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