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보편요금제가 논란 끝에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심사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 문턱이다. 국회가 보편요금제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을 빠른 시일내에 처리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비 인하 공약도 마무리된다. 하지만 국회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질 경우 자칫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신정책이 보편요금제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두 차례 이어진 규개위 심사에서 이해관계자, 전문가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당장 요금 부담을 낮추는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반 시장주의, 정부의 지나친 개입, 장기적 측면에서 소비자 후생 후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정부는 요금인가제 및 신고제 등을 통해 사업자가 도입하려는 요금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요금제에 손대는 보편요금제와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업자의 반대, 지나친 시장 개입, 그리고 수년간 추진해왔던 알뜰폰과 같은 경쟁정책의 후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가계통신비 인하다.
하지만 순수한 가계통신비 인하 목적만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세운 공약은 기본료 1만1000원의 폐지였다. 하지만 기본료 폐지는 과기정통부 조차 수행할 수 없는 공약이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에 과기정통부는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대안은 선택약정할인율 확대, 저소득층 요금감면, 그리고 바로 보편요금제 도입이다. 앞의 두 방안은 실현이 됐고 남은 것은 가장 영향력이 큰 보편요금제이다. 보편요금제 도입만 마무리 되면 기본료 폐지는 못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인하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이 완성되어 갈수록 멀어지는 것도 있다. 바로 경쟁 활성화다.
그동안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 통신정책을 관장했던 부처의 원칙 중 하나는 경쟁이었다. 경쟁을 통한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에게 주파수 특혜를 제공하는 등 유효경쟁정책을 펼쳤고,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매년 어렵게 전파사용료를 감면하고 도매대가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진행해왔다. 비록 현재까지는 실패이지만 수차례의 제4이동통신 심사도 있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 통신정책에서 ‘경쟁’은 찾기 어렵다. 선택약정할인율 확대 역시 사업자 반대에도 불구, “충분히 여력이 있다”며 5%포인트 확대했다. 전파사용료, 주파수대가 등으로 조성되는 기금은 요금감면으로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보편요금제 역시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가 적용되는 요금제는 단 한 개이며 나머지 구간에서는 경쟁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2년마다 정부가 요금제에 손댈 수 있는 환경에서 이통사들이 적극적으로 요금제 경쟁을 펼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보편요금제가 야당 등의 반대로 국회 통과가 미뤄지거나 도입이 불발로 끝날 경우 계류돼있는 시간만큼, 과기정통부의 통신정책도 공전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이다. 보편요금제 도입 가능성 때문에 이통사들은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기 주저할 것이고, 알뜰폰 사업자 역시 정부의 추가 지원대책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보편요금제 불발에 대한 플랜B를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보편요금제 도입에 사활을 걸겠다는 것이다.
제4이동통신과 같은 신규 사업자 등장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보편요금제 도입 뿐 아니라 통신사의 등록제 전환도 포함돼 있다. 의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제4이통 사업은 정부의 공고로 추진돼야 하는데, 과기정통부가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보편요금제는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하지만 통과되면 끝이 아니다. 그간 정보통신 관련 부처에서 꾸준히 추진해왔던 경쟁은 되레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규개위 회의에서 한 교수가 주장했던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가 현실화 될 수 있다. 이래저래 보편요금제 딜레마에 직면한 과기정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