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올해 반도체 업계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인수합병(M&A)이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산업이 성숙되어 있는데다가 M&A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업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반도체 시장은 작년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아지겠지만 장비 시장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는 M&A로 압축할 수 있다. ‘인텔→알테라, NXP→프리스케일, 아바고→브로드컴, 웨스턴디지털→샌디스크’처럼 굵직한 M&A가 줄을 이었다. 성장한계를 돌파하고 낮은 금리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전략으로 각자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와중에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은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로 직접적인 M&A에 발을 담그지는 못하고 있으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주최하는 반도체 장비·재료 전문 전시회 ‘세미콘코리아 2016’을 위해 방한한 시장조사업체 VLSI리서치의 리스토 푸학카 연구원은 “올해 반도체 시장은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으며 반도체는 4.1% 성장하겠지만 반도체 장비의 경우 5% 역성장이 예상된다”며 “지금의 침체기는 조정기라고 볼 수 있는데 전방산업의 가격 하락 압박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10나노급 로직 공정을 개발하는 종합반도체업체(IDM)는 인텔,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글로벌파운드리(GF),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정도에 불과하다. 메모리 분야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가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1년만 하더라도 130나노 공정을 개발하던 IDM은 30곳이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숫자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주요 상위 반도체 업체의 2014년부터 2015년까지의 매출 성장률을 살펴보면 인텔 -0.9%, 삼성전자 11.3%, TSMC 5.7%, SK하이닉스 7.8%,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0.2%, 인피니언 15.9%로 나타났다. 산업으로 보면 전방과 후방산업의 연계성을 엿볼 수 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자제품의 연평균 성장률은 2.2%, 반도체는 5%, 반도체 장비는 1.3%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5년만 두고 따지면 전자제품은 0.5% 성장에 그쳤으며 반도체는 -1.3%, 반도체 장비는 -0.6%로 성장률이 둔화됐다.
올해의 경우 전자제품과 반도체는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반도체 장비의 겨우 -5%로 낙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가 고전하는 이유는 D램 관련 설비투자가 20~30%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방산업에서의 가격 하락 압박이 후방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PC는 계속해서 시장이 고전하고 있는데다가 스마트폰도 포화상태에 다다른 상태다. 올해는 PC가 다소 회복기에 접어들고 웨어러블 기기나 자동차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아서 제한적인 영향만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M&A는 올해도 지속
반도체 업체간 M&A는 올해도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푸학카 연구원은 “최근에는 최신 공정칩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데 50억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 정도 자본을 갖추고 사업을 이끌어 갈 만한 업체가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M&A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2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데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하지만 미세공정이 발전하고 이에 따라 설계와 디자인적인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설계자산(IP)도 상당한 규모가 있어야 하며 기업이 성장하면서 아이디어에 대한 흐름이 둔화되고 폭발적인 혁신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M&A를 가속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결과적으로는 반도체 업계간 구분이 모호해졌다. IDM에서는 자체 칩과 타사 칩을 혼용 생산하는 모델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자체 칩 사업을 병행했는데, 인텔도 마찬가지의 사업 모델을 도입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상태다. 완성품 업체가 팹리스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는 상황도 전개됐다. 애플은 스마트폰 생산과 칩 설계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LG전자도 애플과 같은 모델이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다.
반도체 장비 시장의 경우 산업이 성숙되면서 글로벌 경제성장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세다. SEMI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까지 반도체 장비 투자 증가율은 10% 중후반대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업계 생산 용량 증가율은 한 자릿수 수준에 그쳤다.
SEMI 데니 맥거크 회장은 “반도체 장비 투자가 2009년 이후 둔화될 우려가 있다. 업계가 성숙되고 있으며 공급은 시황을 따라가고 있다”며 “반도체 업계가 계속해서 성장하고는 있으나 환율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장비 시장은 올해 1~2% 가량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3D 낸드플래시와 마이크로프로세서유닛(MPU)에 주로 투자가 이뤄지며 재료는 웨이퍼에서 2~3%, 내년에는 3% 이상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작년 반도체 장비 시장규모는 372억9000만달러(약 45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1.4% 증가한 378억2000만달러(약 46조700억원) 정도의 시장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과 일본 등 주요 각국 통화가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인 탓에 달러 표기액 기준으로는 시장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로는 5~6% 성장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이와 함께 올해 반도체 재료 분야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443억달러(53조9000억원)로 전망됐다. 중국의 반도체 재료 매출이 4% 늘어나며 전체 시장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반도체 재료 매출은 실리콘 웨이퍼, 각종 화학 소재, 포토레지스트 등 전공정 제품과 리드프레임, 본딩 와이어 등 후공정 패키징 재료가 모두 포함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 후보는?
사물인터넷(IoT)은 반도체 산업을 이끌 중요한 키워드다. 다만 IoT를 이용한 각종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시장규모는 그리 크다고 말하기 어렵다. VLSI리서치는 2020년 IoT 반도체 시장규모를 200억달러(약 24조3000억원)으로 내다봤다. 연간 반도체 시장규모가 3000억달러(약 365조4000억원)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큰 비중은 아니다. 저비용, 저수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으며 반도체와 관련해서 차별화 요소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IoT를 저비용의 자동화된 데이터 생성자라고 정의하면, 이 데이터를 처리하는 클라우드와 데이터센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서 2020년 200~300억달러의 추가 반도체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IoT의 성장이 반도체 산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생성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장에 더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미세공정이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면서 새로운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패키징 단위로 집적도를 높여 반도체 성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어서다. 예컨대 하나의 단일 패키지 안에 복수의 반도체 다이나 패키지를 집적하는 시스템인패키지(SiP)가 있다. 여기에 외부 업체에 칩 패키징을 맡기는 비중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SiP와 같은 첨단 패키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SEMI에 따르면 1985년 5% 미만이었던 패키지 외주 생산 비중(금액)은 과반을 넘었다. 웨이퍼에서 반도체가 나오면 테스트 과정이 필요하고 이후에 패키징이 이뤄진다. 그동안 PC가 상당량의 반도체를 소비하는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 더 많이 반도체가 쓰인다. 이에 따라 패키징 기술도 소형화와 통합에 맞춰져 있으며 플립칩과 웨이퍼레벨패키징(WLP)이 모바일 기기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시높시스 아트 드 제우스 회장
전자설계자동화(Electronic Design Automation, EDA)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시높시스 아트 드 제우스 회장이 세미콘코리아 2016 행사를 위해 방한했다. 이 자리에서 제우스 회장은 향후 10년간 반도체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며 이를 가속화하는 것이 ‘소프트웨어’라고 강조했다. IoT 시대에 접어드는 지금 이 시기를 ‘제3의 물결’로 규정하고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발전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계에 다다른 미세공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발전 여력이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의 사례를 봤을 때 (섣불리) 성장을 멈춘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언”이라며 “엔지니어링의 혁신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평면 구조의 반도체에서 수직으로 넘어가며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으며 5~10년까지 5나노는 경제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제우스 회장은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모빌리티를 첫 번째와 두 번째 물결이라면 IoT는 세 번째 물결로 큰 기회가 있다고 봤다. 이전까지는 하드웨어가 먼저 성장하고 뒤이어 소프트웨어가 따라가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라는 도구를 돌리는 엔진이 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상호연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통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스마트가 가능해졌는데 그만큼 반도체가 어떤 형태의 애플리케이션(분야)에 접목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제우스 회장은 “시높시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물결의 중간에 있으며 디자인, 설계, 검증, IP, 리소그래피뿐 아니라 핀펫에서도 200개 이상의 디자인 활동이 있다”며 “IoT만 하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IoT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이뤄졌고 업계에서 ARM 다음으로 많은 IP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체간 M&A로 인해 수익 감소에 대해서는 “M&A는 수직적 통합이다. 괴로운 과정이지만 또 다른 시작을 불러온다고 본다. 시높시스는 이제까지 80개가 넘는 회사는 M&A 했는데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은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만큼 기회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IoT를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와 함께 플랫폼을 견고하게 다져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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