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세상에 출시된 애플 제품의 상당수는 알루미늄이 주로 쓰였다. 아이폰부터 시작해 아이패드, 아이맥, 맥북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이 처음부터 알루미늄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자인 故스티브 잡스가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던 1세대 아이맥을 비롯해 아이북, 아이팟까지 당시 주력 제품은 모두 플라스틱을 주로 이용했다.
애플이 재질의 변화에 관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가 더 작고 강력하면서도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녹여내기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가치를 최대한 절충하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예컨대 배터리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게가 무거워지고 두께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볍고 얇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큼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드니 사용시간이 짧아진다. 재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대한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공이 손쉽고 부품의 성능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조건을 적당히 만족시키는 재질은 플라스틱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다른 재질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됐다. 첫 번째 후보로 꼽은 마그네슘은 다른 업체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보편적인 재질이었다. 가볍고 강했으며 무엇보다 아노다이징과 같이 별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손에 닿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값비싼 가격과 함께 가공이 쉽지 않다는 한계에 있었다. 가격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곡면을 넣거나 구부려서 적용하기가 어려워서 애플이 원하는 디자인 구현이 불가능했다. 특히 색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그네슘합금은 회색 이외의 색상은 따로 칠해줘야 했다. ‘스노 화이트’로 부르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재질 자체가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아이맥이 처음 나왔을 때 반투명 재질을 보고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재질 그대로에서 나오는 색상이 조합되어야 했지만 마그네슘은 그렇지 못했다.
이후 애플은 플라스틱, 강성과 유연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폴리카보네이트를 더욱 개선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이전의 파워맥에서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직후에 나온 파워맥 G3가 크게 바뀌었던 것처럼 후속 제품인 파워맥 G4이 같은 플라스틱을 사용하더라도 얼마나 차별화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당시의 결정체가 바로 G4 큐브다. 얼마나 혁신적인 디자인과 설계였는지 2000년 맥월드에서 이 제품을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의 얼굴에는 거만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복귀 직후 아이맥과 아이북으로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놨다는 점에서 이해가 될 법하다. 판매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는 점을 빼면 새로운 디자인과 재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재질의 극적인 변화도 데스크톱 PC부터 시작됐다. 파워맥 G5는 이전과 달리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여기에는 IBM에서 공급받던 파워PC 계열 중앙처리장치(CPU)의 발열을 해결하기위한 목적도 포함됐다. 오죽하면 일부 모델에는 냉각팬이 아닌 물을 이용해 열을 식히는 수냉식 쿨러가 장착됐을 정도다. 노트북은 파워북 G4에 티타늄을 적용했으나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알루미늄을 적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마그네슘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라이벌로 여겨지던 IBM 씽크패드가 ‘마그네슘 롤 케이지’라는 기술로 내구성과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봐야 한다. 똑같이 따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오직 검은색으로만 선보이는 씽크패드가 일본 도시락 상자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은 애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알루미늄합금
알루미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06년부터다. 대외적으로는 널리 이용하던 폴리카보네이트가 비스페놀과 포스겐과 같은 유독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대한 비난으로 알루미늄을 전면적으로 확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알루미늄 제련에는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며 마찬가지로 환경에 얼마든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획기적인 친환경 재질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폴리카보네이트와 비교했을 때 다양한 형태의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아노다이징을 통해 원하는 형태의 표면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리를 더 우선시했다고 봐야 한다. 높은 열전도성, 특유의 촉감, 가볍고 높은 강도는 애플이 원하는 디자인 철학을 충분히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알루미늄합금은 크게 8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서 알루미늄 재질등급이 나뉘며 4자리 숫자로 구성된다. 합금의 목적이 알루미늄의 무른 성질을 보강하고 부식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인데 애플은 ‘알루미늄+망간+규소’ 합금인 6000번대 제품을 주로 이용했다. 열처리를 통해 강도가 높은 마그네슘(결국 어떻게든 마그네슘은 썼다)을 고르게 분포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급랭공법으로 만든 6061은 가볍고 강도가 높아 자동차 알루미늄휠에도 쓴다. 이 6061이 바로 아이폰4부터 사용됐으며 아이폰6에는 6063이 적용됐다. 6063은 6061과 달리 구리와 크롬이 쓰이지 않는다. 규소와 마그네슘도 덜 쓰이지만 사출성형이 가능해 내부에 부품을 적용할 때 보다 유연한 설계와 함께 생산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참고로 라이벌인 갤럭시S6는 6013을 이용한다. 규소, 구리, 망간, 마그네슘이 0.8%/0.8%/0.5%/1%씩 각각 쓰인다. 원래 용도는 우주선용이었을 정도로 강도와 부식 등에서 월등하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아이폰6S는 어떨까. 여기서부터 애플은 7075를 선택했다. 이 알루미늄합금은 구리 1.6%, 마그네슘 2.5%, 크롬 0.25%, 아연이 5.6% 들어간다. 7000번대는 아연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두랄루민’이라고도 부른다. 두랄루민은 구리와 마그네슘, 아연과 마그네슘을 접목한 계열이 있고 망간과 마그네슘, 마그네슘과 규소를 더한 계열이 있다. 아이폰6S의 경우 내부식성보다는 강도와 무게에 더 중점을 둔 재질을 썼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알루미늄 자체가 내부식성이 있고 아노다이징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내구성으로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초에 이 재질이 비행기에 주로 사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알루미늄으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애플은 당분간 두랄루민으로 대부분의 제품을 제작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두랄루민의 재질적 특성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느냐다. 7075는 항공 업계에서는 흔히 쓰이는 재질이지만 지르코늄을 더해 성능을 한층 강화한 7150이나 8090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애플워치와 이후에 나올 웨어러블 기기에 얼마나 다양한 재질이 추가로 접목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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