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이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내 전자 산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업계에선 마이크론이 매각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면서 현지 업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각) 중국 최대 팹리스 반도체 업체인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의 주식 한 주당 21달러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는 13일 마이크론의 종가(17.61달러) 대비 19.3%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총 제시 인수 금액은 230억달러(한화 약 26조원)다. 2013년 일본 D램 업체 엘피다를 인수한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업계 3위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최근 PC D램 가격 하락세로 주가는 급락 중이다. 지난해 연말 마이크론의 주가는 35.01달러였다. 칭화유니그룹의 자오웨이궈 회장은 이날 블룸버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이크론과의 협력에 관심이 많다”고 말해 인수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마이크론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1988년 설립된 칭화유니그룹은 칭화대학이 설립한 칭화홀딩스의 자회사로, 중국 국영 기업이다. 칭화유니그룹은 2013년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업체인 스프레드트럼 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며 중국 최대 칩 디자인 회사로 떠올랐다. 지난 5월에는 휴렛팩커드(HP)의 중국 서버, 네트워킹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작년 9월 인텔은 칭화유니그룹에 15억달러를 출자하고 지분 20%를 취득한 바 있다.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급락했다. 1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전일 대비 3.24%(4만1000원), 6.66%(2700원) 하락한 122만5000원과 3만785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보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19.3%의 프리미엄으론 인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저렴한 가격을 불렀다는 것이다. 송 연구원은 그러나 “메모리 업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거나(주가가 더 하락하거나), 칭화유니그룹이 인수 금액을 크게 상향한다면 매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뛰어든다면 ‘중국발’ 치킨게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크게 떨어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 같은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LED, 태양광, 디스플레이 사례만 보더라도 중국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쏟아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미세 공정 전환이 빠르면 나는 남고 상대방은 손해를 보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미세 공정 전환이 매우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며 “15나노 이후로는 공정 전환을 통한 원가 절감이 어려울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는데, 이것은 추격을 뿌리칠 무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어떻게든 메모리 산업 육성할 듯
보도가 사실이건 아니건, 인수가 이뤄지건 말건 중국은 어떻게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중국 국무원은 국가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고 투자 펀드를 조성해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월에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중국 공업정보부가 ‘중국 IC 산업투자 기금’을 만들고 반도체 산업 발전을 골자로 하는 ‘국가 전자산업 계획’을 공표했다. 이 계획에서 D램은 중점 육성 과제로 꼽혔다. 1차로 마련된 IC 산업투자 기금은 1200억위안(한화 약 22조원)에 이른다. 이 기금 규모는 계속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국 정부의 ‘눈먼돈’을 받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려는 기업과 자본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이크론을 인수하면 중국이 단숨에 국내 업체들을 추격할 수 있으므로 가장 나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 자본과 기업은 정부 전략 방향에 맞춰 착실하게 해외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작년 8월 베이징 후아 캐피탈은 이미지센서 기업인 옴니비젼을 19억달러에 인수했다. 올해 1월에는 SMIC, JCET가 중국 정부의 반도체 펀드를 활용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D램 분야에선 지난 3월 상하이 지역 펀드인 서밋뷰 캐피탈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특수 D램 설계 업체인 ISSE를 6억4000만달러에 인수했다. 4월에는 동심반도체유한공사가 한국의 D램 설계 업체인 피델릭스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중국 내 언론들은 정부 주도로 설립될 국영 D램 업체의 대표직은 현 SMIC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짜오하이쥔(Haijun Zhao, 赵海军)이 맡게 될 것이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소문도 전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메모리 산업에 뛰어들면 한국 내 메모리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스카웃할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분야의 사례를 봤을 때 국내 전문가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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