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유지기자]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친구(friend)와 적(ener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ienemy)’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어제의 동지가 때로는 적이 돼 경쟁하고 다시 손을 맞잡기도 한다.
해당 기업이나 이 시장 종사자 외에는 큰 관심사가 아닐지라도 많은 IT업체간 인수합병(M&A)과 조직 분리·분사 등의 여러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네트워크·통신 장비업계에서도 최근 대형 M&A 소식이 잇달았다.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사례가 노키아와 알카텔루슨트, HP와 아루바네트웍스의 합병이다.
작년에는 모토로라솔루션의 무선 네트워크 사업부가 지브라테크놀로지스에 인수됐다. 알카텔루슨트 엔터프라이즈(ALE)는 중국 투자기업이 인수하면서 독립법인으로 출범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들은 협력관계에 있던 주변업체들도 영향을 받는다. 대형 기업들 간의 공생과 다툼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잃는다.
예를 들어 노키아가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하게 되면서 IP 라우터·스위치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던 주니퍼네트웍스와는 경쟁관계가 됐다. 코리언트도 옛 NSN에서 분사했지만, 앞으로 노키아네트웍스가 협력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사라지게 될 것 같다.
합병할 알카텔루슨트가 IP 라우터와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사내벤처 자회사인 누아지네트웍스를 갖고 있고 광 전송 장비 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용 무선랜(와이파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아루바네트웍스는 오는 11월 분리해 새롭게 출범할 ‘휴렛패커드(HP) 엔터프라이즈’의 일부가 되게 되면서, 협력관계에 있던 많은 업체들이 고민에 빠지게 됐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아루바 제품을 자사 무선랜 제품으로 공급해오던 델이나 알카텔루슨트엔터프라이즈(ALE)가 대표적이다.이들은 HP 엔터프라이즈의 경쟁사이다.
아루바는 브로케이드, 아리스타네트웍스, 주니퍼네트웍스와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왔다.
아루바가 이렇게 많은 스위치 업체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독보적인 네트워크 시장 강자인 시스코와 경쟁관계에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앞으로 아루바는 사라지고 HP 엔터프라이즈의 네트워킹 부문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계속해서 기존과 같은 협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힘들 것이란 징조는 이미 나타났다. 델이 아루바의 경쟁사인 에어로하이브네트웍스와 협력을 체결해 재판매를 시작했다. 기존 고객사를 위해 아루바 OEM 공급 계약을 당분간 유지하면서 자연스레 타사 제품을 공급하는 형태로 옮겨갈 것이란 유추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루커스와이어리스는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나섰다. 시장 2위 업체인 경쟁사가 M&A 이슈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신기술인 802.11ac 웨이브2 신제품을 발빠르게 출시했다.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동시에 ‘전문업체’로서 강점을 적극 알려 차별화 효과를 노린 행보다.
물론 아루바를 합병하는 HP도 손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 상승은 커녕 기존에 가진 시장 입지를 잃는 것 같은 잘못된 M&A 결과를 원치 않을 것임은 당연할테니까.
저마다 어떤 현명한 선택으로 눈앞에 놓인 상황을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이것이 바로 ‘잔인한 통합’의 시대를 살고 있는 IT기업들의 치열한 생존투쟁이 아닐까 싶다.
오는 7월 말, 자리에서 물러나는 20년 최장수 CEO이자 IT업계 거물인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작년에 열린 ‘시스코 라이브 2014’ 기조연설에서 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IT 업계에서 ‘잔인한 통합(brutal Consolidation)’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5년 전에 존재했던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살아남은 기업은 24%에 불과하다. 25년 후에는 사기업 가운데 87%가 사라질 것이고, 전세계 대기업 중 1/3만이 그 가치가 유지될 것이다.”
<이유지 기자>yj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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