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정부의 통신시장 진흥 및 규제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과거 CDMA, 초고속인터넷 등 천문학적 투자가 집행되는 사업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우리나라가 ICT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더 이상 정부가 대규모 통신 프로젝트를 주도하지 않지만 통신인프라 경쟁력은 더욱 앞서나가고 있다. 와이브로에서 조금 주춤했지만 3G에서 LTE로의 진화, 100메가 인터넷에서 기가인프라로의 진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통신네트워크 진화로 인터넷 세계에서 많은 기업들과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하고 있지만 정부의 규제정책은 통신시장 변화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 규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지엽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과잉 규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처럼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 역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신은 대부분 나라에서 규제산업으로 묶여 있다. 초기에는 독점을 인정하고 신규사업자 진입도 쉽지 않은 시장이다. 때문에 시장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보편적 서비스 차원에서 규제는 필수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규제완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이용자 혜택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OECD 34개 국가 중 8개 국가에서 점유율 50%가 넘는 통신사가 존재하지만 인위적인 규제는 하지 않고 있다. OECD는 요금인가제도와 관련해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인가제도 하에서는 경쟁구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정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미국 규제기관인 FCC는 1996년 통신사의 약관신고의무를 전면 폐지했다. 영국도 2006년 소매요금 규제를 폐지했다. 일본 역시 1996년 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했고, 1998년에는 신고제마저 폐지했다. 현재 일본은 요금경쟁이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목소리가 높지만 통신시장의 경우 여전히 사전규제로 사업자의 발목을 잡거나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 목표를 달성하려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이동통신 유통시장 안정화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징금, 영업정지 등 실패한 규제정책을 만회하기위한 더 강한 규제정책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당초 이동통신 유통 선진화가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요금인하 정책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일방적인 지원금과 요금할인폭 조정은 과거 팔목을 비틀어 기본료를 내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통신사업자의 반응이다.
대표적 사전규제인 요금인가제도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요금인가제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요금을 인상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재의 통신시장 경쟁환경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미래부 역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일부 반대에 쉽사리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요금인가제 유지에 대해 여전히 정부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수단을 갖고 있는 것을 바라거나, 아니면 요금인가제 폐지 이후 시장에서 예측하는 요금인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 후발사업자들의 반발 등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방송통신 결합상품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운 규제를 적용할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방통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현재 결합판매 요금할인율이 개별 서비스 요금 합을 기준으로 30% 이하로 규정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과도한 규제권을 휘두르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내 통신산업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20년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사업자간 경쟁 촉진이 어렵고 후발사업자는 정책적 수혜에만 의존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통신사업자에 편중된 규제체계를 C(콘텐츠), P(플랫폼), N(네트워크), D(디바이스)를 아우른 수평적 생태계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이달 초 국회서 열린 ‘CPND 융합에 따른 ICT 경쟁 및 규제 프레임워크 개편방안’ 토론회에서 권 의원은 “현재 국내 경쟁상황평가 체계는 사업자간 네거티브 선전에 따른 비효율적 규제경쟁만을 촉발시키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중심에서 CPND로 확장하는 포괄적 규제 ▲수직적 칸막이식 규제에서 수평적 규제체계로의 전환 ▲네거티브 규제 및 사후규제 중심 ▲국내·해외 사업자 역차별 해소 및 동등 규제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관점으로의 정책 전환 등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권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CPND 규제 일원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기존 규제는 CPND 등 ICT 참여자간에 발생하는 이해관계에 대해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CPND 뿐 아니라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과 변화를 담은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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