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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공공 오피스 SW, 포맷 말고 기능으로 경쟁해야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내 컴퓨터에 설치된 워드프로세서는 한글컴퓨터의 한컴오피스 ‘(아래아)한글’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내 컴퓨터에는 설치돼 있지 않다. 나는 ‘한글’로 doc 문서와 hwp를 모두 열람하고, 편집한다.

내가 ‘한글’만을 쓰는 이유는 ‘한글’의 기능이 ‘MS 워드’보다 특별히 더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물론 ‘한글’은 좋은 소프트웨어다). 정부 및 공공기관의 문서를 볼 때 ‘한글’ 이외의 소프트웨어로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doc(x) 문서는 ‘한글’로도 열어 일고 편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글과 MS 워드 두 개의 소프트웨어를 병행해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이로써 컴퓨터의 자원과 소프트웨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글’로 doc(x) 문서를 불편함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이유는 MS가 자신의 파일 포맷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MS는 자신의 파일포맷을 오피스오픈XML(OOXML)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고, 국제 표준에 등록했다.

한컴은 이 표준에 따라 ‘한글’ 내에서 OOXML 문서를 읽을 수 있도록 기능을 구현했다. 내가 ‘한글’만으로 MS 워드에 의해 작성된 문서까지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이는 공개된 표준의 최대 장점이다. OOXML이 공개 표준이 됨에 따라 MS 오피스뿐 아니라 한컴 오피스, 인프라웨어의 폴라리스 오피스, 씽크프리 오피스, 구글 독스 등 다양한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MS 오피스로 작성된 문서를 읽을 수 있는 기능을 구현했다. 반면 MS 오피스는 또 다른 공개 표준인 오픈다큐멘트포맷(ODF) 문서를 지원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선택할 때 성능과 기능, 가격 등만 평가하면 된다. 문서 포맷의 제약 때문에 싫어하는 비싸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를 억지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또 공개 표준은 국제기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 특정 회사의 경영상의 이유 때문에 문서 포맷이 갑자기 사라질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정부 및 공공기관은 공개된 국제 표준 대신 hwp를 사실상 단일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문서 포맷은 한글과컴퓨터의 hwp다.

물론 한컴 측도 지난 2010년 hwp의 형식을 일부 공개하고, 국가표준으로 등재시켰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사용할 명분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컴의 문서 포맷은 공개 정도가 떨어지고, 국제 표준이 아니다. 현재 hwp 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컴 오피스가 필요한 상황이다.

인프라웨어 정진권 CTO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폴라리스 오피스나 네이버 오피스는 HWP 문서를 잘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차트나 수식은 깨져서 보인다”면서 “(한컴의 파일포맷 공개는) 일부 항목이 누락됐거나, 설명이 부족하고, 공개된 내용을 이해 할 수 없는 경우, 최신 정보가 미공개 된 사례 등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컴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정한 경쟁의 결과가 아니다. 그 동안 hwp라는 포맷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글’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볼모로 잡힌 양상이다.

최근 영국은 국가 문서에 ODF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정부기관의 문서 소프트웨어 시장에도 이제는 공정 경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hwp를 과감히 버리고 ODF나 OOXML 등의 국제 표준을 도입하거나, 한컴이 hwp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100% 공개해야 한다.

문서 포맷을 이용해 워드프로세서를 파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성능과 기능, 가격으로 승부해야 한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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