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을 살펴보면 아직도 정품 프로그램의 시리얼넘버를 제공함으로써 정품 프로그램의 무단 복제를 도와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제는 이용자에게 프로그램 온라인 등록을 강제함으로써 이러한 형태의 부정행위를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그 동안 시리얼넘버 배포에 의한 피해는 심각했었고, 또한 누구든지 사회통념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위 사안에 대한 대법원 결론은 사회통념과 반대로 나왔다.
위 사안에 대해 우리나라 대법원은 ‘프로그램은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사용되는 일련의 지시, 명령으로 표현된 것을 말하는데, 컴퓨터프로그램 시리얼번호는 컴퓨터프로그램을 설치 또는 사용할 권한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수단인 기술적 보호조치로서, 컴퓨터프로그램에 특정한 포맷으로 된 시리얼번호가 입력되면 인스톨을 진행하도록 하는 등의 지시, 명령이 표현된 프로그램에서 받아 처리하는 데이터에 불과해 시리얼번호의 복제 또는 배포행위 자체는 컴퓨터프로그램의 공표·복제·개작·번역·배포·발행 또는 전송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위와 같은 행위만으로는 컴퓨터프로그램저작권이 침해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도2900 판결).
대법원의 요지는 프로그램의 시리얼넘버는 프로그램 저작물이 아니어서 갑이 시리얼넘버를 생성하고 배포한 행위 자체를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시리얼넘버를 제공한 갑은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대부분의 개발자들이나 소프트웨어기업은 대법원의 결론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가 봐도 대법원의 결론은 결론 자체로 보면 부당하게 보이긴 한다. 대법원의 무죄 결론은 법리적으로 기술의 발전을 법이 예상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현재의 저작권법으로는 갑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
시리얼넘버는 통상 기술적 보호조치로 분류된다. 기술적 보호조치란 저작권자가 원하지 않은 저작물에의 접근이나 부당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저작물에 적용시킨 기술적인 통제장치를 의미한다.
기술적 보호조치에 관한 규정은 1996년 WIPO 저작권조약 및 WIPO 실연·음반조약에 포함된 이후 미국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에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DMCA에 따르면 기술적 보호조치에는 권한 없는 저작물의 복제, 전송 등의 침해 행위를 막는 ‘권리침해통제장치’와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용자들의 접근을 막는 ‘접근통제장치’로 구별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도부터 기술적 보호조치에 관한 규정을 도입했고, 현행 저작권법 역시 정당한 권한 없이 고의 또는 과실로 기술적 보호조치를 제거·변경하거나 우회하는 등의 방법으로 무력화하는 사람, 정당한 권한 없이 무력화 장치·제품 또는 부품을 제조·수입·배포·전송·판매·대여 등을 하는 사람에 대해 일정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저작권법 제104조의2). 무단으로 시리얼넘버를 배포하는 행위는 위의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안에서 현행 저작권법에 의거해, A사는 무단으로 시리얼넘버를 배포함으로써 A사의 기술적 보호장치를 무력화한 갑에게 저작권법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hi@minwh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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