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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중국서 맥못추는 한국 생활가전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얼마 전 출장차 중국 베이징에 들러 시내의 생활가전 매장을 여러 곳 둘러보니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중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두 회사가 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유럽, 일본 업체들의 저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국내 업체가 처음부터 중국에서 고전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90년대만 하더라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에서 높은 인기를 올렸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중국 현지 업체들, 그러니까 하이얼, 하이신, 메이디 등이 급성장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급속히 줄었다.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을 생산기지로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어차피 중국 업체가 가격을 가지고 밀고 들어오면 승산이 없고 굳이 손해를 보고 제품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LG전자는 프리미엄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지만 반대로 중저가 제품은 경쟁사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중국 업체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시장은 브랜드와 함께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삼성전자나 LG전자가 모르지는 않았을 터다. 다만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얼의 산요 생활가전사업부 인수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CES 2013’의 하이얼 부스를 방문했을 때 품질과 디자인에 적지 않게 놀란 기억이 있다. 국내 업체 고위 관계자들도 중국 업체의 빠른 성장세를 인정했다. 물론 여전히 기술 격차가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지만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중국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고전하는 것도 기술에서 앞서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지 모른다. 중국 현지 업체가 아닌 지멘스나 보쉬, 베코 등보다 판매량이나 시장점유율에서 뒤떨어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로 보인다. 북미나 아시아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잘 나간다지만 유럽에서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업체는 오는 2015년 전 세계 생활가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 시장은 유럽이다. 그런데 중국 시장에서 유럽 업체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뒷맛이 썩 개운치 않다. 삼성전자 CE부문 윤부근 사장과 LG전자 HA사업본부 조성진 사장이 올해 초 허리라인, 그러니까 중간급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런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만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공장’에서 ‘전 세계의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중국에서, 그것도 유럽 업체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홈그라운드 공략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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