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올해 반도체 업계는 유럽 재정위기, 북미와 중국의 소비둔화로 이뤄진 세계적인 경기 불안에 직격탄을 맞았다. 반도체 시장은 2년 만에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며 주요 업체들이 시설투자를 줄이면서 최후방 장비 업계의 실적도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시장 상황이 부진한 직접적인 이유는 PC의 수요 축소 때문이다. 올해 PC 시장은 11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도체 최대 수요처 자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꿰차고 앉았다. 증거는 인텔의 ‘추락’과 퀄컴의 ‘비상’이다. PC용 CPU칩을 만드는 인텔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퀄컴은 20% 이상 고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 2년 만에 역성장=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3.2% 축소된 2899억3600만달러로 전망했다. WSTS는 경기 침체로 PC 등 완제품 판매가 줄어들자 반도체 산업도 큰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시장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건 미국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급속히 위축됐던 2008과 2009년 이후 2년 만이다(관련기사 1).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 아이서플라이, IC인사이츠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가트너는 올해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3%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관련기사 2). 스티브 오 가트너 책임연구원은 “거시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완성품 재고가 쌓였고 이는 반도체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PC 공급망, 메모리, 아날로그 및 개별 부품 등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다”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관 및 조사업체들은 내년부턴 반도체 시장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겠지만, 예전과 같은 두 자릿수 이상의 고성장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 각국이 저성장 기조에 진입함에 따라 경기 변동에 민감한 반도체 시장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황 악화로 소자 업체들이 시설투자를 축소하자 장비 업계도 한파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액은 382억달러로 전년 대비 12.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SEMI는 내년에도 장비 시장 규모가 2.3% 축소, 역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관련기사 3).
◆스마트폰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는 활황=인텔을 비롯한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들이 경기 불안의 영향으로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퀄컴, 브로드컴, 소니 등 스마트폰용 칩을 주력으로 삼는 업체들은 올해도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이서플라이는 퀄컴과 소니가 각각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베이스벤드(BB)칩과 CMOS이미지센서(CIS)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해 20%가 넘는 고성장을 할 것으로 관측했다(관련기사 4).
스마트폰 시장에 적극 대응한 중소형 규모의 팹리스 업체들도 큰 폭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국내 업체인 실리콘화일과 실리콘웍스도 사업 호조로 올해 반도체 업계 매출 성장률 톱10 안에 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두 업체는 각각 모바일용 디스플레이 구동드라이버IC와 스마트폰용 CIS를 주력 제품으로 삼고 있다(관련기사 5).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계의 실적도 전망도 긍정적이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ST마이크로, 르네사스 등 종합반도체(IDM) 업체들이 고정비를 낮추기 위해 노후화된 공장을 폐쇄하거나 생산 능력을 감축하면서 파운드리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는 전년 대비 매출이 17%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2위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는 31%의 고성장이 예상됐다(관련기사 6).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애플 물량 증가에 힘입어 올해 50%가 넘는 고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세계 파운드리 사업자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 성장률이다(관련기사 7). 다만 애플이 거래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장기적 위험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관련기사 8). 삼성전자도 퀄컴 등 파운드리 고객을 늘리고 있다(관련기사 9).
◆메모리 업계 재편… 치킨게임 끝?=미국 마이크론이 파산보호 신청을 한 일본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치열한 치킨게임을 펼쳤던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도시바, 마이크론 4개 업체로 재편을 마쳤다(관련기사 10).
이처럼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4개로 줄어들면서 구매자(완제품 업체)보다 공급자(소자 업체)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공정 고도화에 따른 기술 장벽 및 대규모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위험 요인으로 신규 업체의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관련기사 11)
업계 전문가들은 메모리 가격이 급락하는 다운텀에서도 과거와 같은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가 이하로 메모리를 판매하는 대신 생산량을 줄이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동수 사장과 SK하이닉스의 권오철 사장도 이 같은 견해에 동의했다. 이들은 “앞으로 메모리 치킨게임은 없다”라고 단언했다(관련기사 12).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재편에도 불구, PC 수요 부진에 따른 D램 가격 하락은 올 하반기까지 이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신규 운영체제인 윈도8도 PC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다(관련기사 13).
메모리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도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올해 플래시메모리 시장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D램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플래시메모리가 다량 탑재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판매는 크게 늘어난 반면 PC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14).
PC에 탑재되는 범용 D램 제품의 점유율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대 아래로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이는 PC가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면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D램 비중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PC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시대로 본격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관련기사 15).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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