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IT생태계 1부] IT생태계 구현, 왜 절실한가.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위기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다. 동구밖에서 어슬렁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앞마당에 서있다. 진부하지만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진짜 위기다. 지금이 그렇다.”
국내 소프트웨어(SW)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촉망받아온 A사. 이 회사는 연간 매출액 약 400억원대의 탄탄한 중견 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홍모 대표(54)는 냉정하게 현재 회사의 위치를 심각한‘위기 상황’으로 규정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20여명의 벤처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직원수 170여명의 중견 IT기업으로 꾸준하게 성장했다. 창업초기 IMF사태로 어려움을 겪긴했지만 잘 극복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별 걱정없이 사업을 꾸려왔다. 대기업 계열의 대형 IT서비스 업체들과도 관계가 좋아 여기 저기서 '일감'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것 없어 보이는 이 회사, 제3자가 보기엔 위기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IT엔지니어출신의 홍 대표는 “매출 구조, 인력구조, R&D투자, 미래 사업비전 등 어느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SW기업인 이 회사의 매출은 놀랍게도 SI(시스템통합)매출 비중이 언제부터인가 60~70%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SW업체가 아닌 사실상 SI 회사인 셈이다. '인력(인건비) 장사'를 하면 당연히 영업이익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회사가 원하는 SW라이선스 수입은 여전히 매출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SW라이선스 매출을 거두고 있는 오라클이나 IBM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사례는 여전히 딴세상 얘기다.
대기업 IT서비스업체들과의 좋은 파트너십도 실상은 말뿐이다.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이 수백억원 규모의 IT사업을 헐값에 수주해 놓고, 뒤로 돌아서는 이익을 보전하기위해 A사와 같은 컨소시엄 참가 업체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강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경기가 어려워진 최근 몇년새 이같은 상황은 더 빈번해졌다. 대금 결제를 제때 해준적도 없다. 물론 일부 협력업체들에게 어음을 끊지않고 현금으로 선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예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업담당 상무를 통해 몇번 싫은 소리를 했더니 최근에는 아예 컨소시엄에서 배제해버리는일까지 발생했다. ‘당신들 말고도 일할 사람들은 줄섰다’는 협박이다.“협력업체가 아니라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게 홍대표의 탄식이다.
그런데 홍대표를 정말로 힘들게하는 것은 '회사 비전의 부재'이다. 당장 R&D에 투자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만하다. 특히 최근 몇년새 기업 업무환경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전환하기위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버전 업데이트가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A사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R&D투자 비용 걱정은 둘째치고 자바(Java)개발자를 비롯해 모바일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구하는 데 엄청난 애를 먹었다.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소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분야의 IT개발자들은 이직율도 심하고, 이들은 오히려 프리랜서를 선호한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들까지 모바일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이 분야의 IT개발자를 구하는것은 더욱 어려워 졌고, 오히려 기존에 있는 기술자를 뺏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홍대표는 “그나마 회사의 재무제표가 괜찮을때 제값받고 파는 것이 주주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요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IT생태계’, 대한민국 IT산업의 화두가 되다 = 지금까지 언급된 A사의 사례에선 우리 나라 IT산업에 왜 '건전한 IT생태계의 구현'이 절실한지 절절하게 묘사돼 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무한경쟁은 엄연히 현재 IT시장에 군림하는 키워드이다. 승자 독식의 구조, 양극화의 삼회, 대기업과 중소 IT협력업체들간의 약탈적 수직관계, 1원 입찰로 대표되는 발주처의 횡포는 여전하다.
물론 IT업계 일각에선 단순히 'IT생태계'의 개념을 구글, 애플, 삼성 등 글로벌 IT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업체들의 세력을 구별짓기기위한 '기술 진영' 논리로 좁혀서 본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과 스마트가전, 모바일 표준, 웹 플랫폼, 서버 등 실로 다양한 IT분야에서 'IT생태계'란 용어가 적용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IT생태계'는 혁신적인 IT기술의 최적화된 결합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IT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병폐적 요인들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것이 'IT생태계의 구현'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고 적합한 의미의 적용이다. 따라서 IT생태계 구현을 위해선 IT업계의 자발적 노력과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과 뒷받침이 필요하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 KT, SK텔레콤, NHN 등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IT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건전한 IT생태계 구현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중소 협력사 지원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다만 아직 IT업계 전반적으로 ‘공생’, '상생'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IT생태계의 구축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IT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공감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물론 그 '사회적 책임'이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적선'이 아니라 올바른 경쟁의 룰의 천착, 정당한 가격의 SW 라이선스료의 지급, 제대로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계’는 생물학적인 용어다. 생물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비록 하나의 개체이지만 결국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로 보는 개념이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더 큰 시너지, 더 고부가가치의 사회경제적 결실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IT생태계는 결국 우리 IT산업계가 극심한 경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상호협력, 동반자의 관계성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좋은 IT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공감대에서 비로소 적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IT생태계가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 최근 1~2년간 혁신적인 기능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모바일 플랫폼이 소비자 혁신, 기업 혁신의 첨병이 되면서 모바일 플랫폼에 기반한 운영체제(OS), 위치정보와 전자책과 같은 핵심 콘텐츠와 멀티미디어 서비스, 여기에 통신서비스와 단말 제조사 등이 거대하게 하나의 유기적인 체인으로 묶여지는 ‘기술적 생태계’ 구축이 자연스럽게 강조되고 있다.
IT생태계란 단순히 IT시장 질서의 황폐화를 막기위한 차원에서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혁신적 기술 결합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극대화시킨 사례가 적지않다.
IT생태계를 '하나의 기술적 결합'으로 본다면, 구글의 사례가 가장 극적이다. 지난 2010년 한해동안 구글은 23개의 기업을 M&A했다, 특히 구글은 콘텐츠 보안 전문업체(Winevine Technology), 디지털 동영상기술업체(Green Parroat Picture), 온라인 동영상 제작업체(Next New Network)를 인수함으로써 자사의 유튜브(YouTube)서비스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 콘텐츠로 키워냈다.
특히 영악한 구글은 지난해 8월에는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인수함으로써 구굴의 안드로이드OS를 이용해 단말기를 제조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동시에 단말기 부분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애플 등 반 구글 진영의 특허권 공세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IT생태계 구축과 정부의 정책 개입, 효과는?=IT시장의 왜곡을 바로잡고 양극화를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필요할때도 있다. 현실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 의지에만 기대어 IT생태계 구현을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다. 올해 5월초 결국 국회를 통과한'SW 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지식경제부는 대통령주제의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SW분야의 선순환적인 생태계를 조성하기위해 공공부문 IT사업에 대한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주요 내용으로하는 '공생발전형 SW생태계 구축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SW산업 진흥법 개정안'이다. 이로써 삼성SDS,LG CNS, SK C&C 등 65개 대기업계열 IT서비스업체들은 공공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물론 이와 동시에 정부가 마려한 선진적인 수/발주 체계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예를 들면 IT업체들이 RFP(제안요청서)작성에 소요되는 비용을 사업비에 반영시키고, 발주기관 전문성을 보완하기위해 PMO제도를 도입한다. 또한 공공 정보화시스템 지적재산권을 개발 기업이 행사하고, 이와함께 발주기관이 기존 상용SW제품이 있는 경우에는 기존 제품을 우선 구매하고 직접 개발을 자제하기위한 상용SW제품 시장 침해 방지 제도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됐다.
그러나 'IT 생태계'를 구현하기위한 정책적 개입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IT생태계를 복원하고, 선순환적인 기능을 갖추려면 무엇이 정책의 합리성이 충족돼야하고, 반대로 부작용은 최소화되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돼야한다.
이런 점에서 ' SW산업 진흥법'은 여전히 논란이 적지않다. 비록 공공 IT시장에 국한되긴 했지만 인위적인 칸막이로 시장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IT서비스업계 내부에서는 "IT대기업을 견제하고 중소 IT기업에게 비즈니기회를 더 넓혀주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책적 수단이 너무 강하다"며 비판적인 시각이다. 오히려 공공IT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을 분명히하고, 투명한 입찰 프로세스, 기존에 제시됐던 SW분리발주 제도 등을 더욱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감독하는 것이 더 큰 정책적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
한편으론 공공시장 진입이 제한된 대기업 IT서비스업체들은 기존 공공IT인력의 활용에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됐고, 이는 오히려 민간 IT시장의 대기업 참여 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IT생태계의 궁극적 가치 = 한편 IT생태계는 IT융합(Convergence)의 시대의 핵심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IT산업이 타 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정보화의 효과를 다양한 분야에서 구현함으로써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 시키는 ‘도구’로서 역할하고 있다.
IT산업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계 전체를 놓고 '생태계'를 대입시키면 아마도 가장 큰 시대적 담론인 '경제민주화'와 맞닿는 부분이 적지않을 것이다.
건강한 생태계는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단순한 협업 체인의 고도화가 아니라 유기체들의 건전한 결합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성립되기 때문이다. 결국 'IT생태계의 구축에 IT코리아의 미래가 달렸다'는 구호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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