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최근 HP가 자사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PC 사업을 분리시키겠다고 발표해 관련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HP PC사업부가 곧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HP는 지난 2002년 최대 컴퓨터 업체였던 컴팩을 인수하면서 전세계 1위 PC 업체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후 업체 간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의 잇따른 등장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번 PC 사업 철수 결정을 두고 2002년 당시 컴팩 인수를 주도했던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조차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번 HP의 결정은 옳았다”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등 수익성이 높은 기업 시장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는 선택은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글로벌 IT 기업들은 수익성이 높은 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으며, 현재 이들에게 가장 관심이 높은 분야는 바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다.
주지하다시피 HP의 이번 결정은 IBM의 행보의 유사하다. IBM은 1981년 개인용 컴퓨터(PC)를 선보이며 시장을 주도했지만, 수많은 경쟁자들로 인해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2005년 이를 중국 레노보에 매각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의 기업 비즈니스 구조로 전환해왔다. 물론 IBM도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HP가 PC 사업을 분리하고 신성장사업으로 주도해왔던 웹OS 기반 태블릿 사업을 접는다고 한 것은 6년 전 IBM의 결정만큼이나 획기적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수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HP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과연 이번 HP의 결정이 어떠한 형태로 스스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PC사업을 매각한다고 해도 HP는 여전히 하드웨어 회사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HP는 강력한 유닉스 및 x86 서버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기업용 하드웨어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서 HP가 서버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IBM 역시 PC 사업을 접긴 했지만 메인프레임이라는 막강한 하드웨어 사업을 기반으로 기업용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결국 HP가 IBM처럼 혁신의 키워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솔루션 포트폴리오와 서비스를 위한 컨설팅 능력을 어떻게 확보해 나가느냐가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부분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이미 칼을 뽑았다면 혁신은 실행에 옮겨져야한다. 어중간한 포지션은 HP를 오히려 더 위험에 처하게할 수 있다.
물론 HP는 그동안 소프트웨어 사업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인수합병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 온 것은 사실이다. 비즈니스기술최적화(BTO) 업체인 머큐리인터액티브와 컨설팅 및 IT서비스 업체인 EDS 등 굵직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HP는 관련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솔루션 분야에선 아직 HP가 IBM이나 오라클 등의 업체와 경쟁하기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마땅한 인수합병 대상 업체도 이제 시장에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와 데이터웨어하우징(DW) 등 각광받았던 IT분야의 유력 업체들은 이미 거대 IT기업들에게 먹힌 상태다.
HP는 PC사업 포기를 선언함과 동시에 영국계 기업용 검색 솔루션 업체인 ‘오토노미’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빅 데이터’ 등 기업의 정보 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보계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의도다.
HP로선 클라우드, 대용량 분석 등 신흥 IT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HP의 오토노미 인수는 그 시작점에선 의미있는 선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토털 솔루션 벤더가 트렌드가 되고 있는 현재 HP의 솔루션, 서비스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짜여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혁신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되는 IBM처럼 HP의 이번 PC사업 포기선언이 결과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악수를 둔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론 HP의 혁신은 범위를 확대해서 보면 이미 하드웨어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돼 있는 우리 IT산업과도 너무나 닮아있다. 우리가 HP의 행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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