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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빠듯한데... 네이버가 'HCI' 포기 않는 이유 [real! AI pro]

배부른 자들의 학문? 기업의 미래 AI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 'HCI'

AI 대전환의 시대, 쏟아지는 이슈와 키워드 중 '꼭 알아야 할 것'과 '알아두면 좋은'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real! AI Pro]는 이 고민을 현업 전문가들이 직접 선정한 주제와 인사이트를 담아 명쾌하게 정리해드립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최근 인공지능(AI) 개발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은 예상보다 큰 투자비용 지출입니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보다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더 약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요즘인데요. 이 가운데 네이버가 네이버클라우드 AI랩을 통해 진행 중인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와 AI를 접목하는 연구는 그래서 더 눈길이 갑니다. 사실 HCI는 '배부른 자들의 학문'이라 불릴 만큼, 수익성과 거리가 먼 기술로 분류되거든요.

하지만 다시 의외로, 그 답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기업의 경쟁력 및 사회적 책임 제고란 일반적인 키워드 안에서 말이지요. HCI는 다소 낯선 주제일 뿐, 현시점 연구와 투자에 결코 물음표만 띄울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관해 오늘은 네이버클라우드 AI랩 HCI 연구 책임자인 김영호 리더가 먼저 HCI의 현대적 개념부터 AI와의 시너지 효과, 당면한 과제 등까지 HCI 연구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드립니다. 김 리더는 개인의 건강·웰빙 증진 분야의 전문 연구자로서, 시각 및 공학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연구 결과물들을 다수 발표해온 전문가로 꼽힙니다.

(ⓒ 디지털데일리)
(ⓒ 디지털데일리)

■ '모든 시연의 어머니'가 된 초창기 HCI

안녕하세요, 김영호입니다. HCI는 이름 그대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폭넓게 다루는 학문이지만, 구체적인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요. 특히 1968년 HCI 철학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되는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마우스 프로토타입 시연'에서 이 가치가 잘 나타납니다.

지금은 컴퓨터를 쓸 때 누구나 화면에 그림 형태의 아이콘과 시각화된 프로그램창으로 컴퓨터를 제어합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상호작용을 위한 커서와 이를 조작하는 마우스지요. 엥겔바트는 당시 컴퓨터가 인간의 보편적인 지적 능력 향상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할 것을 예측했지만, 사용법이 너무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당시엔 그저 까만 화면에 전문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만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었거든요. 당연히 컴퓨터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미지를 보고 손가락으로 누르듯 조작 가능한 마우스와 이를 위한 지금의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가 등장하면서 컴퓨터는 단숨에 비전문가도 약간의 학습을 통해 조작할 수 있는 도구로 변화했습니다. 솔직히 현재를 사는 우리가 그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겠지만, 당시 엥겔바트의 마우스 시연 행사는 후일 '모든 시연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Demos)'로 불릴 만큼 큰 충격과 파장을 남긴 일대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초의 마우스 시연 장면 中 (ⓒ 유튜브: 1968 “Mother of All Demos” by SRI's Doug Engelbart and Team)
최초의 마우스 시연 장면 中 (ⓒ 유튜브: 1968 “Mother of All Demos” by SRI's Doug Engelbart and Team)

■ HCI 투자 기업, 국내에 아직 드물어

자, 그럼 다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술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질문에 답하는 것'이란 관점에서 오늘날 AI까지 이어지는 HCI 연구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마우스 시연이 그 자체로 충격적이긴 했으나 HCI 연구 분야로 본격 자리 잡은 건 미국에서 1980년대, 한국은 당시 미국 유학으로 HCI를 접한 1세대 연구자들이 1990년~2000년대에 귀국하여 교편을 잡은 직후입니다. 현재는 이들에게 교육받은 저를 포함한 2세대 HCI 연구자들이 더 많은 대학 강단에 섦으로써 한국에서도 HCI에 대한 인지도와 연구 역량이 고양되는 시점이고요.

다만 아쉬운 건 국내 HCI 논문 대부분은 카이스트를 비롯한 대학이 주도하고 있을 뿐,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HCI 학계에 대한 기여는 해외 기업들보다 소극적인 점입니다. 반면 해외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현재 AI 산업을 이끄는 빅테크들도 HCI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매년 최소 10편 이상의 HCI 논문을 이 분야 주요 학회(CHI)에 발표하는 점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집니다.

이 가운데 오랫동안 학계에 머물던 제가 네이버에 입사한 것도 당시 네이버가 HCI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자 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HCI는 단순히 기계 조작의 편의를 높이는 것 외에도 필연적으로 '취약층의 디지털 접근성 사각지대' 해소란 사회적 가치 실현과도 이어집니다. 특히 AI 기술이 급속도로 성장 중인 지금은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는데요. 네이버는 이미 2022년부터 자체 LLM(대형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를 이용한 케어콜(취약계층 돌봄을 위한 AI 안부전화) 서비스 등을 운영하며 AI를 통한 사회복지에 관심을 드러낸 기업이기도 했습니다.

네이버의 AI 기반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 소개 이미지 (ⓒ 네이버)
네이버의 AI 기반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 소개 이미지 (ⓒ 네이버)

■ 네이버는 돈 버는 HCI를 합니다

각설하고, 현재 네이버의 AI 분야에서 HCI의 효용 확보 및 연구방향도 크게 세 갈래를 지향합니다. 첫째는 '80점짜리 AI 모델로 100점짜리 사용자경험(UX)'을 만드는 것입니다.

네이버는 애초에 국내 기업 중 상대적으로 일찍 AI 전선에 뛰어들었고, 중장기적 선행 연구와 실서비스 개발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연계하는 기업문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아직 우리 업계에 완벽히 정착하지 않은 AI 기술을 최종 사용자 대상 서비스(ex: 클로바X, 검색 CUE: 등)에 효과적으로 녹이려면 기술과 사람의 접점에서 출발하는 HCI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최근 AI 전선의 판도는 성능 중심에서, 최종 사용자에게 AI에서 어떤 가치를 느낄 수 있을지 납득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는가 여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앞서 마우스 등장 이전의 컴퓨터와 이후 컴퓨터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다시 상기해 보세요. 아무리 똑똑한 AI 서비스라도 지금처럼 자연어 채팅이 아닌, 특정 명령어를 써야 한다면 대중은 챗GPT 할아버지를 데려와도 그 가치를 깨닫기 어려울 겁니다.

이 말은 즉, 기술 개발의 결과물에 적절한 UX를 입히는 HCI 연구가 동반되지 않으면, 그 기술은 지닌 바 잠재력과 달리 80점짜리로 남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지금까지 그렇게 도태된 기술과 서비스가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네이버가 왜 돈이 안 되는 HCI 연구를 놓지 않느냐 물으신다면, 전제가 틀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확보한 AI 기술의 가치 및 사용자와의 접점을 HCI적 관점에서 극대화하는 연구는 오히려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AI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 DALL·E AI 생성 이미지)
(ⓒ DALL·E AI 생성 이미지)

관련하여 지난해 네이버는 연례행사인 단(DAN) 2024에서 '온 서비스(ON-SERVICE) AI: 검색에서 발견까지, 사용자 경험 진화와 창작 생태계 강화'와 같은 주제 및 화두를 던진 바 있습니다. 온 서비스 AI 선언은 네이버도 이제 기존 서비스와 AI 접목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하면 됩니다. 또한 그 근간에 HCI 관점이 녹여지게 됩니다. 그동안 '자사 제품 내 AI 내재화'를 천명한 기업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HCI의 가치를 이해한 곳과 아닌 곳의 성공 격차는 멀지 않아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 AI를 고려한 HCI 연구도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AI 특성을 고려한 HCI 역량 강화입니다. 후술하겠지만 AI에 HCI 개념을 잘 접목한다는 건, 사람 뿐 아니라 LLM을 비롯한 AI가 포함된 '양방향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그만큼 AI와 사람 양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접근은 결국 서비스 단계에서 각종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일례로 병원에서 간호사 대신 사전문진을 담당하는 LLM 챗봇을 만든다고 가정해볼까요? LLM은 자유대화 능력에 강점이 있으므로, 과거의 챗봇처럼 객관식 선택지에 정해진 답변만 내놓도록 만드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게다가 자유대화는 사용자가 무슨 말을 할지, AI가 어떤 응답을 할지 사전에 정해둘 수 없으므로 시나리오 작성 자체가 무의미하지요.

따라서 요즘은 LLM에 “(1) 너는 친절한 사전 문진 도우미다. (2) 먼저 방문자에게 인사를 하고, 어디가 아파서 방문했는지 묻는다. (3) 방문자 증상에 따라 진료과를 추천한다. 현재 우리 병원에는 이비인후과, 내과, 가정의학과가 있다.”는 식으로 미리 역할과 페르소나(성격)를 입력하는 '시스템 인스트럭션(System Instruction)' 기법이 널리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방문자는 본인의 증상이 아니라 간호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예측에 벗어난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챗봇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침이 없으면 대화의 흐름을 통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당연히 방문자의 만족도 떨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결국 기존 HCI가 사람의 행동양식을 연구함으로써 고정된 시스템을 쉽게 쓰도록 했다면, AI+HCI는 마치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두 사람을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연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당연히 연구 방향과 접근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요.

김영호 리더가 2024년 널리 세미나에서 네이버 AI랩의 HCI 연구 사례를 소개하는 모습 (ⓒ 널리 세미나 네이버TV 갈무리)
김영호 리더가 2024년 널리 세미나에서 네이버 AI랩의 HCI 연구 사례를 소개하는 모습 (ⓒ 널리 세미나 네이버TV 갈무리)

저희 연구팀이 지난 수년간 효과를 본 접근법 중 하나는 대화를 '소목적'을 가진 여러 단계로 쪼개고, 각 단계에서 소목적이 달성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는 흐름의 대화를 디자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방법도 챗봇의 행동이 100% 디자이너 통제 안에 머물지 않으므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결국 더 이상 기획자가 챗봇을 잘 디자인하고, 개발자가 넘겨받아 구현하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으로는 LLM 챗봇 개발이 어렵습니다. 기획자도 LLM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개발자도 AI 행동에 대한 인간 중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각 포지션이 처음부터 협동하면서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이 방법 또한 AI 시대 HCI 연구자들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 단순 '기획'이나 'UX 디자인'이 아닙니다

마지막은 HCI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현재 IT 업계의 실무진은 주로 '디자이너-기획자-개발자' 3자 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때 현업에서 HCI는 기획자의 영역으로 두루뭉술하게 이해되는 경우도 많고, UX 디자인과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HCI 전공자들이 훈련한 다양한 사용자 이해 방법론은 현업에서 깊이 활용되지 못하고 개인의 디자인 역량에 간접 기여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 중심의 AI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HCI 전문가들이 독립적인 역할을 갖고, HCI 방법론들이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일부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HCI 전문가들이 내외부에서 HCI 지식 교류의 장을 여는 노력도 더욱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이런 인식 전환은 하루이틀 사이에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학계와 달리 정작 HCI 가치가 적용된 최종 제품을 서비스하는 한국 기업들은 아직 HCI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인데요. 그만큼 국내만큼은 기업으로서 영향력이 큰 네이버가 조직 및 제품 차원에서 HCI 연구에 투자하는 일이 곧 좋은 선례이자,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로써 저희는 당장의 이익만 좇는 것이 아닌, 비즈니스와 사용자 이해와, AI 경쟁력 제고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오늘 '네이버는 왜 HCI에 투자하는가'에 대한 큰 틀의 답변이 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AI와 HCI에 대한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피부에 더욱 와닿을 실제 사례와 문제 해결법을 중심으로 AI 시대 속 HCI의 가치를 풀어보려 합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HCI를 '비주류'라 말할 수 있겠지만, AI와 진짜 공존이 시작될 가까운 미래에서 HCI는 반드시 이 업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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