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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韓 첨단 산업 갈 길 먼데…계엄령 후폭풍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심화되는 미중 갈등과 에너지난, 전쟁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 계엄을 선포한 후 이른 새벽 이를 해제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경제·산업계에 떠넘기고 있어서다. 3시간 동안 벌어진 국회에서의 사투, 3시간의 침묵 끝 계엄 해제 선포 이후 남은 것은 널뛰기를 하는 원/달러 환율과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 대한 경영 환경 리스크였다.

지난 3일 10시 20분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46.1원까지 급등하다 1415.8원으로 다시 떨어졌고, 오전 기준 1415원대를 횡보 중이다. 국내 증시에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때아닌 비상 계엄 선포에 4일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KOSPI) 개장 이후 지분을 3727억원(11시05분 기준) 팔아치웠다. 코스피 및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같은 시각 기준 전일 대비 1.31% 하락했으며, SK하이닉스는 0.12%대 하락으로 전일 대비 횡보하고 있다. 코스피 시총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3.02% 하락했고, 디스플레이 업종 대장주인 LG디스플레이는 3.47% 떨어졌다.

현재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을 영위하는 산업계에서는 해당 사태에 대한 이슈를 주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른 시간에 계엄 선포가 해제되면서 충격이 크지 않았으나, 장기적인 사업 관점에서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사업부는 통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서울권에서 근무 중인 인원에 대해서는 일부 재택 권고가 내려갔다. 워낙 유례 없는 사태가 발생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뭔가 말할 수 있을 만큼의 문제는 없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기업 입장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첨단산업을 다루는 기업 입장에서 국가적 차원의 비상 운영 체제 선포는 쉬이 볼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패권 경쟁으로 공급망이 나날이 블록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른 공급망·신뢰도 측면의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물품에 대한 공급망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은 물론, 내부 정쟁 및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저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대만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대내외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TSMC는 당초 파운드리 사업으로 중국·미국 기업과 활발히 교류하며 대만 내 인원 고용 확대, 수출 저변을 증가시키는 성과를 냈다. 2020년대 들어서는 미중 갈등, 중국과 대만 간의 불안한 관계성에 따라 미국, 일본 등으로 신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는 추세다. 대만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서 반도체 생산 공급망을 불가피하게 다원화한 셈이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남북 갈등에도 높은 신뢰성을 쌓아 온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단숨에 정쟁, 지정학적 불안 요소로 주목받게 된다면, 국내 기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현상에 불을 붙이게 될 수도 있다.

활기가 떨어진 금융투자 시장에 다시금 악재를 불러왔다는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국내 시장은 이미 배터리 시장의 급격한 성장 둔화, 레고랜드 사태·일부 상장기업의 실적 충격 여파로 투자매력도가 크게 떨어져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상장, 혹은 신규 상장에 대한 실적 기준의 문턱을 높이면서 성장 잠재력을 가진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한 두 차례 기업공개를 미뤄 진행하거나 미룬 상황이다. 이번 사태 이후 금융업계의 투자 눈높이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면 기업 상장을 앞둔 강소기업들은 물론, 신사업에 나선 대기업 계열사·중견기업들의 투자 활기도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에 국한해서는 국내 이탈을 염두에 둔 기업들이 이미 늘고 있다. 주요 경쟁국 대비 부족한 지원책과 인력풀, 횡보하거나 겉도는 정책 및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있을 이유가 없어서다. 한 기업 관계자는 "현재 중소·중견 기업들의 국내 최대 마지노선은 판교고, 이보다 더 매력도가 떨어지게 된다면 본사를 옮기는 것도 염두에 둘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내놓기도 했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몰 연장, 추가적인 AI반도체·패키징 등 지원 방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의미없는 부담만 가중시키는 셈이다.

비상 계엄 사태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정 정당의 우스갯소리로 치부됐던 건이 현실화되면서, 정쟁 심화에 따른 추가적인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어졌다. 내부 정쟁에 지속적으로 골몰한다면 국가전이 된 AI, 반도체, 전기차 시장에서 앞으로는 우리 기업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 될 수도 있다.

2024년의 끝이 다가오면서 한 해의 재미있는 인터넷 밈(meme)으로 웃어넘겼던 '정상화'는 이제 올해 한국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시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언급하면서다. '정상화'라는 단어의 비정상화, 기업 환경 불확실성의 비상사태 '정상화'가 일어나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국가적 위기를 고조시킨 그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이고, 국가전으로 번진 첨단 산업의 기로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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