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국회가 예산을 증액해준다는데, 정부부처가 이를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불법스팸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내년도 예산 증액을 소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반대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방통위의 정책 추진 의지에 의문이 제기됐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가 지난 14일 진행한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에서 방통위는 불법스팸 대응체계 구축 관련 예산 증액 제안을 거부했다.
여야는 이날 소위에서 불법스팸 대응체계 구축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불법스팸이 이용자의 단순 불편을 넘어 불법도박·대출 등 2차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증액 규모는 최소 42억원으로, 기존 예산안 대비 131% 늘었다. 총 74억원이다. 당초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내년도 방통위 예산안에서 불법스팸 대응체계 구축 관련 예산을 올해(32억2100만원) 대비 2000만원(0.6%) 삭감 편성했다.
세부사업별로 살펴보면 스팸대응시스템 운영 및 고도화 예산은 기존 15억9000만원에서 42억7100만원으로 늘었고, 스팸방지 인식제고 및 법제연구 예산은 4억4600만원에서 11억4600만원으로 확대됐다.
신규 내역사업(대량 문자 발송 사업자 관리·감독)을 위한 예산도 20억원 추가 편성됐다. 불법 스팸이 급증한 배경으로 '대량문자 발송 사업자의 난립'이 지목된 데 따른 것이다.
국회 과방위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이 지난달 방통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자 스팸 발송경로는 대량문자발송서비스가 97.7%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약 1200개 대량 문자 발송 사업자가 난립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미흡한 실정이다.
하지만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날 국회의 예산 증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대 이유로는 신규 내역사업 추진을 위한 기재부의 정보화전략계획(ISP) 작업을 제시했다. 대량 문자 발송 사업자를 관리·감독하기 위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재부의 ISP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관련한 내용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는데 우선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의 ISP 작업은 최소 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시스템도 없는 상태에선 예산을 받아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국회는 방통위의 설명이 납득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신규 내역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ISP 절차를 밟는데 사용해도 된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 방통위는 막무가내였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방통위는 신규 내역사업 뿐 아니라, ISP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다른 사업에 대해서도 예산 증액을 거부한 상황이다.
실제 정부부처가 국회가 주겠다는 예산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정부부처는 예산을 증액해달라 요청하고, 국회는 이를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증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방통위는 삭감된 예산으로 불법스팸에 대응해야 한다.
국회 관계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 6월부터 시행한 문자 전송자격 인증제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등 대량 문자 발송 사업자 관리를 위한 방통위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소위에선 스팸 전송사업자에 대한 속도 제한 등 ISP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 예산을 우선 활용하는 방안 등도 제안됐으나, 방통위는 이마저도 거절했다. 대책을 세울 때까지 마냥 손 놓고 있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성인광고나 도박, 주식투자, 대출 권유 등의 불법 스팸문자 남발은 청소년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들에게도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라며 "이에 여야 예결위원들이 증액에 동의했는데, 정작 방통위가 이를 거부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가 앞에서는 불법 스팸문제 규제를 얘기하면서 속내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재정당국과 협의가 필요했고 현재는 증액이 필요한 예산에 대해서 수용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증액 수용 의사를 과방위에 전달했는지’, ‘(증액 수용에) 신규사업(대량문자발송사업자 관리·감독) 증액도 포함된건지’를 묻는 질문엔 “이정도만 답변드릴수 있을 것 같다”라며 말을 아꼈다.
국회 과방위 예결소위 위원들은 아직까지 관련된 입장을 못했다고 밝힌 가운데, 방통위의 반응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통상 국회는 정부부처 예산 증액 요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리어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방통위의 수용을 요청하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방통위가 사업 의지가 없는데, 관련 예산을 반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국회 과방위는 오는 19일 표결을 거쳐 내년도 방통위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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