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수인 고성능컴퓨팅(HPC) 인프라를 찾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스타트업과 연구·공공기관 등에 이를 지원하는 정부 사업에서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간 자존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7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따르면, NIPA가 진행한 ‘2023년도 고성능컴퓨팅 지원사업’에 공급자로 참여한 CSP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 KT클라우드, 네이버클라우드다. 사업금액(정부가 지불한 임차료)을 기준으로 3사간 비중을 살펴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43%, KT 37%, 네이버클라우드 20% 순으로 차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NIPA가 주관하는 ‘고성능컴퓨팅 지원사업’은 중소기업·스타트업과 대학교·출연연 등 연구기관 등을 대상으로 AI 개발에 필요한 HPC를 민간 클라우드 기반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019년부터 시작돼 지난해에는 700곳 이상 기업·기관이 신청해 정부 지원을 받았다.
CSP 입장에서 이런 지원사업은 사실 정부가 어느 정도 가격 상한선을 정해주기 때문에 수익성이나 사업성이 좋은 사업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선호도에 따라 각 CSP가 제공하는 HPC 인프라의 경쟁력을 짐작해볼 수 있고, AI 개발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사업을 통해 자사 AI 인프라에 최적화된 연구 성과를 내거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것도 유리한 지점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이 사업에 참여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가장 많은 기업·기관의 선택을 받으면서 사업금액 측면에서도 높은 비중을 가져갔다. 지원 대상자들은 보통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자원 규격과 성능을 확인하고 원하는 CSP를 직접 선택하는데,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엔비디아 AI 가속기 중에서 이전 버전(V100)보다 2배가량 성능이 좋은 A100 GPU와 전용 인피니밴드를 제공해 선호도가 높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지원사업에선 아직도 V100 이하 GPU를 제공하는 곳이 많은데, 사실 가격적인 측면에서 H100까지 기대하진 못해도 그만큼 빠른 고용량 처리를 원하는 니즈가 크다”며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고성능의 A100과 통신 처리 속도를 높이는 인피니밴드를 결합해 제공함으로써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KT클라우드와 네이버클라우드는 그동안 다양한 정부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선제적으로 인프라 역량과 사업 수행력을 입증했음을 강조해왔고, 실제 이 HPC 사업에서도 카카오엔터프라이즈보다 먼저 참여해 레퍼런스를 쌓아왔지만 아쉬운 결과를 내게 됐다. 또 다른 국내 CSP인 NHN클라우드 경우 이미 광주 소재 ‘국가 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유사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이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CSP 4사로 꼽히는 이들의 고성능컴퓨팅 인프라 경쟁은 향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최근 자사 ‘카카오 클라우드’가 ‘국제 슈퍼컴퓨팅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전세계 슈퍼컴퓨터 톱(Top)500 랭킹에서 각각 44위와 70위에 안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네이버 ‘세종’(25위)과 KT ‘DGX 슈퍼POD’(90위) 등도 순위에 있지만, 국내 CSP로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든 것이라고 카카오 측은 강조했다.
NHN클라우드도 전세계 품귀를 빚고 있는 엔비디아 H100을 국내 CSP 최초로 1000대 이상 선점하며 지난해 10월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개소했고, 이를 기점으로 AI 인프라 경쟁력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하이퍼클로바X’에 최적화된 AI 클라우드 서비스 ‘뉴로클라우드 포 하이퍼클로바X’로 작년 10월부터 수익을 내고 있다. 최근 H100 기반 AI 학습 서비스인 ‘AI 트레인’을 출시한 KT클라우드도 경쟁사들 뒤를 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로 고성능 컴퓨팅 자원이 중요해지면서 데이터센터에 얼마나 좋은 GPU를 탑재했고 이를 통해 누가 더 효과적인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CSP의 사업 당락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I 확산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HPC 수요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실제 고성능컴퓨팅 지원사업은 올해 122억원이 책정돼 지난해(145억원)보다 감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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