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삼성전자가 그룹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SK하이닉스에 뺴앗긴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되찾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 등도 확대될지 주목받는다.
삼성전자는 21일 디바이스솔루션(DS)에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선임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기존 DS부문장을 역임하던 경계현 사장은 전 부회장이 맡은 미래사업기획단장에 임명됐다.
전영현 부회장은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메모리사업부장을 거친 D램 전문가다. 2017년에는 갤럭시 노트 발화 문제가 발생한 삼성SDI의 구원투수로 등판, 5년간 대표이사직을 맡아 배터리 사업 성장 축을 다졌다. 2024년부터는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위촉돼 삼성전자 및 전자 관계사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삼성전자 DS부문에 찾아온 위기를 떨쳐내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부문에서 HBM 개발 시기를 놓치며 SK하이닉스에게 관련 시장 1위를 내줬고,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타 사업부의 과제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인사로 메모리사업부의 D램 부문에 대한 기술 리더십 회복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30년 가까이 메모리 시장 1위 입지를 다져왔으나 지난해 급부상한 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HBM3 등에서 SK하이닉스를 솔 벤더로 채택한 선례가 있는 만큼, HBM3E·HBM4 등 차기 제품에서도 삼성전자의 입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또 다른 축인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위기론이 커지고 있다. 업계 1위인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 인텔이 관련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지난해 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1.2%, 삼성전자가 11.3%였다. 전분기 점유율 격차 45.5%포인트(p)에서 49.9%p로 더 벌어졌다.
파운드리 사업의 난제 역시 엔비디아다. AI 데이터센터용 칩이 첨단 칩 시장 내 입지를 넓히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 AI칩을 TSMC가 전량 생산해오고 있어서다. 엔비디아의 시장 점유율이 90% 이상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수주를 확보해야만 TSMC 점유율 추격이 가능한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 파운드리의 숙원 과제로 반도체 설계자산(IP) 확보와 첨단 패키징 경쟁력 향상을 꼽고 있다. 공정별로 활용 가능한 IP를 확대해야만 엔비디아·구글 등 빅테크는 물론,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 등 수주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의 IP 협력사는 대략 50개 내외인 반면, TSMC는 100개사 이상으로 확보한 상황"이라며 "인텔마저도 국내를 포함한 IP 협력사를 늘리고 있어 이를 빠르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2.5D·3D 등 성능 향상을 확대하는 첨단 패키징을 발빠르게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TSMC가 2.5D 패키징 기술인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를 엔비디아·AMD 등에 제공하고 있어, 이같은 빅테크 수주를 확보하려면 관련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자체적 역량 외에 전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며 "이에 대한 기술개발 및 생태계 투자가 선행돼야만 TSMC와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춰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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