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배터리 업황 부진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실적으로 드러났다. 국내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이 유럽 등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부진을 겪은 가운데, SK온이 적자 폭을 키우며 그 뒤를 이었다. 삼성SDI만이 BMW 등으로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 기조를 유지하며 업황 대비 선방한 실적을 거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6조1287억원, 영업이익 1573억원을 기록한 경영실적을 공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9%, 전분기 대비 23.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5.2%, 전분기 대비 53.5% 급감했다.
1분기 영업이익에 반영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 공제 금액은 1889억원이다. 고객사 수요 감소와 미시간 법인의 신규라인 전환에 따른 일부 생산라인 중단으로 전분기 대비 감소했다. IRA 세액 공제액을 제외한 1분기 영업이익은 -316억원으로 집계됐다.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 부진은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 수요가 둔화하면서 배터리 출하량이 위축된 탓이다. 배터리 출하량이 줄면서 폴란드 등 주요 핵심 공장 가동률도 내려앉았고, 이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까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급락한 원료가격이 올해 1분기 배터리 판가에 반영되며 수익성 하락을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SK온은 지난해 4분기 창립 이래 최소로 줄였던 적자 폭이 다시금 확대되는 부진을 겪었다. SK온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6836억원, 영업손실은 3315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분기 대비 1조395억원 줄었고, 영업손실 폭은 전분기 기록한 186억원보다 3000억원 이상 확대됐다.
SK온 역시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배터리 재고조정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전기차 업체의 배터리 주문량이 감소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줄고 고정비가 상승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반영액도 전분기 대비 83.9% 급감한 385억원을 기록했다. AMPC가 급감한 이유는 지난해 4분기 생산한 배터리 재고가 1분기 판매된 영향이다. AMPC가 생산한 배터리 셀·모듈에 대한 세액공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1분기 조지아 공장 등 SK온의 미국 공장 가동률이 급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전기차 수요 둔화 추세가 작년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 반영된 것으로 봤다. 특히 연말연시를 지나며 보조금 소진 등의 영향으로 전기차 판매가 비수기에 들어선 것도 영향을 줬다.
반면 삼성SDI는 당초부터 추진해 온 질적 성장 중심 기조가 빛을 발했다. 삼성SDI의 1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5조1309억원, 영업이익은 2674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2%, 28.8% 떨어졌다. 다만 영업이익률은 5.2%로 전년 동기 대비 1.8%포인트(p) 하락에 그치며 LG에너지솔루션(2.6%), SK온(적자) 대비 선방한 모습이다.
이번 삼성SDI의 실적 선방에는 프리미엄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회사가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전기차 제품 등을 꾸준히 겨냥해왔고, BMW·아우디 등 고부가 차량을 판매하는 고객사를 확보한 덕에 부진을 면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미국 전기차 고객사인 리비안이 지난 1분기 1만3588대의 차량을 인도하며 시장 기대치를 넘어선 것도 실적에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K-배터리 3사간 실적에 온도 차가 드러나면서 향후 설비투자(CAPEX) 계획에도 차이가 엿보인다. 삼성SDI가 계획했던 투자 집행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한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그동안 추진해온 투자 계획을 지연시키거나 축소시키는 모양새다.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 부사장은 "올해 투자는 자동차 배터리업 특성에 맞게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 수요에 근거에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는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 미국 합작 등이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46파이, 전고체, 리튬인산철(LFP) 등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최근 고객사 상황을 볼때 당분간 대외 환경과 수요의 개선 가시성이 크지 않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과 선제적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 투자에 집중하되, 투자 우선순위를 따져보고 능동적으로 투자 규모 및 집행 속도를 조절해 CAPEX 집행 규모를 낮출 것"이라며 투자 계획 연기를 시사했다. SK온도 컨퍼런스콜을 통해 "비우호적인 업황 대응을 위해 유럽 설비 증설 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는 둔화된 전기차 수요가 하반기를 기점으로 차츰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사 신차 출시가 예고된 가운데, 리튬 등 원재료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서 배터리 재고 축적(Restocking)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다만 전기차의 높은 초기 구매단가를 낮추기 위해 리튬인산철(LFP)·미드니켈 배터리가 선호되고 있어, 자체적인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는 기대 요인과 미국 대선 등 위험 요인이 상존하고 있어 섣불리 반등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긴 어렵다"면서 "수율 상승과 원가 절감 방안 등 내실 다지기가 호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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